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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25. 2022

서리태 콩국수

국수 한 그릇에 여름을 담아 보낸다.


콩국수를 했다. 아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내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아닌데 맛있게 먹어줄 식구가 없다는 이유였다. 얼마 전 수강생이 콩물을 갈아와서 같이 나눠먹은 일이 있었다. 그때 올해 콩국수를 해 먹지 않은 것과 서리태를 한말이나 사고 소비를 못한 게 떠올랐다. 미리 중면을 사놓은 게 있어서 콩 6컵을 씻어서 불려놓았다. 저녁때 불린 콩을 뚜껑 열고 삶아 식혀서 믹서에 곱게 갈아냈다.


백태도 있었지만 서리태로 한 검은 콩물이 먹고 싶었다. 불린 서리태는 굳이 콩 껍질을 벗겨내지 않았는데 콩 껍질에 영양이 많고 고소한 맛과 색을 내주기도 한다. 백태처럼 벗겨내지 않아도 되니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견과나 잣을 넣지 않아서 고소한 맛은 덜하나 서리태의 진한 맛을 더 오래도록 느끼고 많은 양을 했기에 보관에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깨워서 저녁상에 둘러앉는다. 남편은 아들이 오니까 콩국수를 해 준다면서 질투 섞인 투정다. 혼자 있을 때는 안 해주었다면서. 그런 이유를 대니 할 말 없는 것도 아니나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 콩물에 얼음을 넣고 찬물에 씻은 중면을 사리 지어 놓았다. 골금 짠지(무말랭이 무침)와 고추장아찌, 열무김치를 곁들이니 한상이 되었다. 저녁에 먹는 콩국수는 금방 소화도 되고 속이 부대낄 이유도 없기에 영양이 듬뿍 들어간 콩물이 몸에 잘 흡수되는 거 같다. 고소한 국물에 소금 간을 살짝 해서 시원하게 한 모금 마셔본다.


한동안 아이들이 어릴 땐 가쓰오부시 국물의 시원 짭짤한 냉메밀을 좋아해서 여름이면 즐겨 먹곤 했다. 최근 몇 해 전부터 콩국수를 더 자주 해 먹고 있는데 콩이 몸에 좋기도 하지만 고소하고 진한 국물로 만든 콩국수를 맛볼 일이 점점 없기 때문이다. 매번 먹고 싶을 때 냉면처럼 자주 사 먹을 수도 없거니와 먹고 싶어도 희멀건 국물로 하는 콩 국물만 있어서다. 잘하는 곳에 가서 매번 줄 서서 먹기엔 아까운 음식이 콩국수 아니던가. 좋은 국산콩을 미리 사놓고 잘 삶아서 견과를 넣어 곱게 갈아 만든 콩 국물 한 그릇이면 여름이 번쩍하고 지나가는 듯하다. 시원하게 또는 따뜻하게 해서 묽게 마시면 속이 편한 두유가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첨가물 없는 천연의 맛이다.


늦은 여름을 보내면서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맞이하는 콩국수 한 그릇. 올해도 이렇게 8월이 지나고 있다.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음식이야말로 감사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 비기이기도 하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어와도 아직 태양의 열기가 그러들지 않았다. 콩국수 한 그릇에 천천히 여름을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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