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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22. 2022

고슴도치 가족

딸에 대한 관찰


오래간만에 마음이 평화로운 주말이다. 딸이 휴가를 갔다 왔다. 2박 3일간 비가 쏟아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랑 부산에 다녀왔다. 어떻게 갔다 왔는지 어디를 방문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으나  KTX를 타고 갔더니 기차 멀미가 났다고 했다. 기차 멀미는 첨 들어 봤지만 내색은 안 했다. 나도 멀미가 심해서 차를 타기만 하면 얼굴이 노랗게 질리곤 했었으니까.


며칠간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고 친구 만나며 늦잠을 푹 잔다. 난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며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매일같이 달리기만 하는 시간들 속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나까지 닦달하고 채찍을 들어야 하는 시기도 아니다. 각자 자기의 인생을 잘 찾아가고 있지 않은가. 내 역할은 응원하고 믿고 사랑해 주며 넓은 품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정말 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뽀얀 밝은 얼굴을 들이민다.


어제는 늦게 들어오면서 버거킹 2개를 사들고 왔다. 내가 잘 안 챙겨 먹을까 봐 생각해 준 거였다. 사실 저녁 늦게 뭘 먹는 것은 잘 안 하는 일이다. 딸 덕에 남편과 셋이서 햄버거 2개를 나눠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딸이 사 와서인지 햄버거조차 맛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다가 대학원 준비는 잘 돼가는지 물었다. 현재 연구소 일을 계속 병행하고 있는데 연구원을 염두에 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졸업 후 취직하겠다고 하더니 선배들 만나보며 여러 자문을 구하고 있다. 인정을 받는지 대학원 선배들조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꼭 필요하다고 자꾸 출장을 데려가곤 한다. 일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챙김을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후배를 챙겨줄 위치에 오르니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 아닌가. 야무져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나 보다. 어리게만 보이던 딸도 이제는 자기의 몫을 해내고 있다.


딸이 지금 무엇을 해야 되나 고민이라 했다. 그래서 한 학기 남았으니 앞으로 뭘 해보고 싶은지 적어보라고 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흥미를 느끼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지 그런 것을 결정할 때라고 했다. 평생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으니 졸업 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라며 말을 건넸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일, 어떤 일을 할 때 좋은지 현재 상태를 기록해 보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답이 나올 것이라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앞에 두고 혼자서 적어보라고 말이다. 그런 과정이 현재의 자신을 잘 알게 해 줄 것이라 했다. 짧은 시간이나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는 딸이 대견하다. 내가 해주는 말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만은 우리 때랑 다른 세상에서 앞으로 어떤 시련을 만나도 잘 겪어내리라 믿는다.


딸이 입던 옷을 모두 빨아서 외출할 옷이 없다더니 원피스를 입고 나간다. 딸이 안 입으면 내가 입으려 산거였는데 냉큼 입겠다고 한 옷이었다. 짧아서 집에서 입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젊으니 무얼 입고 나가도 괜찮다. 치마가 짧다고 한마디 하면 엄마는 구식이라고 하니 말도 못 해보고 일찍 들어오라 했다. 그래도 이쁘다. 얼굴은 앳된 중학생 같은데 친구들 만난다고 멋을 내고 나간다.  눈에는 중학생, 잘 봐야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평소 화장을 잘 안 하고 다니나 친구들 만날 때만큼은 예쁘게 꾸미니 젊음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얼굴이 하얗고 뽀얀 게 엉덩이가 토실하다. 헐렁하게 큰 티셔츠만 입다가 딱 붙는 옷을 입으니 그저 내 눈엔 사랑스럽게 하트만 보인다. 그러니 딸이 나보고 '고슴도치'라고 한다. 엄마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고. 요즘 나이 드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직 괜찮아. 나도 고슴도치야."라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는 고슴도치 가족인가 보다.


아기 같기만 하고 어리게만 보이는 딸이 어느새 졸업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와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딸의 앞날이 지금과 같이 환하게 빛나기를 조용히 고개 숙여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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