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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20. 2022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삶> 리뷰, 2006, 독일, 로리앙 헨켈 폰 도너스 마르크


동독 공산 사회의 비밀경찰(슈타지) 비즐러가 예술인(드라이만 과 크리스타) 감시를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여자를 빼앗기 위한 권력자의 요청으로 감시를 붙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즐러는 이념이 신념이 된 듯한 자비심 없는 그런 감시자이자 교수였다. 그런 그에게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24시간 그들을 통해 들려오는 대화 내용과 삶의 흔적들로 인해 비즐러는 조금씩 변화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시자로 대상이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을 소화, 흡수하며 동화되어 간다.


사실 우리는 남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의 생각이나 말투, 행동을 따라 하곤 한다. 서서히 그들의 생활과 삶에 동화되어가는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처럼 때로는 좋거나 나쁜 것에 물들 수 있다.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자극이 없던 그의 삶에 다른 이의 생각이 끼어들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들을 감시하면서 천천히 그의 변화가 시작된다.


인간에게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성이 있다. 그게 언제든 간에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릴 수 있으면 된다. 대단하게 아름다운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진심을 담은 노랫말이나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받고,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 알지 못했던 감성을 일깨울 수도 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벌인 일들을 밀고하러 갔지만 결국엔 권력에의 아부를 눈치채고 모른 체한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여태껏 자신이 가졌던 가치관과 신념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순간의 선택은 스미듯 깊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친구이자 상사조차 변화를 감지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작은 심경의 변화로 시작된 비즐러의 거짓말은 결국엔 모든 것을 잃게 만들고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4년 넘게 시간이 흐르고 동서독이 통일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시간이 지나 드라이만은 우연히 비즐러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이만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라는 책을 출간하며 전문에 감사의 헌사를 남기고 비즐러가 책을 구입하면서 끝이 난다. 책 제목은 친구가 자살했을 때 선물 받은 악보이기도 하고, 피아노 연주를 듣고서 비즐러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진심을 담아 이런 노래를 듣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순 없을 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 말 때문이었을까.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긴 했지만 비즐러는 그때까지의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으로 감시자에서 드라이만을 살려주는 해방자로 변화된다. 암울한 배경과 시대상이 잘 드러나고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독일은 비밀경찰 자료를 없애지 않고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했다. 정말 독일다운 결정이지 않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동독의 폐쇄적인 상황과 맞물려 지독했던 비즐러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하지만 작은 심경의 변화로부터 신념까지 바꾸는 선택을 한다. 인간은 변화가 어려운 동물이라 한다. 하지만 때론 말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인해 바뀌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건 사람의 기본 바탕엔 예술과 사랑, 억압에 반하여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 권력과 아부,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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