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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Feb 04. 2023

편지로 풀어가는 이야기

『윤희에게』리뷰, 2019, 한국, 임대형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온통 하얀 세상 오타루. 동물 병원을 하는 쥰은 윤희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고모가 우연히 편지를 부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0대 딸 새봄이가 편지를 열어보고 같이 바닷가 기차를 타고 떠나게 된다. 딸의 남자 친구도 같이 데리고서. 앙큼한 십 대의 발랄함과 더불어 생각 깊은 딸의 배려였다. 엄마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고 수능 후 여행을 가자고 하는 깜찍함까지 모두 갖추고 어리숙하지만 풋풋한 10대의 사랑도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엄마랑 딸의 흡연도 보여주고 솔직해 보이긴 하나 여분의 삶을 벌주면서 살았다는 편지는 마음이 쓰리다. 약간의 희망도 보여주는 영화다. 엄마와 딸의 툴툴거리는 대화는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다. 낡은 아파트에 사는 윤희의 편치 않은 삶을 보여주며 그에 반해 쥰은 동물 병원 의사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모와의 일상으로 다소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오는 지역의 특성과 윤희 삶과는 반대되는 모습이 비친다. 쥰도 마음 한쪽이 쓰리고 윤희를 그리워했나 보다.


딸은 엄마가 이혼으로 혼자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아 엄마를 선택했다고 한다. 보통은 마음이 더 편하든지 경제력이 나은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어둡고 칙칙한 내용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일본으로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하늘 아래 바닷바람을 가르며 기차를 타고 간다. 북해도 바닷가를 기차로 달려보고 싶어졌다. 눈이 쌓여 치우고 또 치워도 쌓여가는 눈 속에 사는 이들의 모습이 있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하는 말로 변화하고 싶은 현실을 말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을 늘 품고 있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고 다른 시공간을 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우리가 한 번씩 여행을 꿈꾸는 것과 같다.


코로나를 겪으며 편한 여행과 이동하는 자유를 제한당했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자유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큰 선물이었다. 전염병의 끝을 향하고 있으나 전과 같은 자유로움과 마스크 해제에도 남을 의식하며 벗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든 지나가야 비로소 귀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


사실 퀴어 영화인 줄 몰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중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배우의 힘이었다. 기운이 처지지 않게 새봄이의 밝은 기운이 이야기의 흐름을 올려주고 있다. 그러나 스토리는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진행이었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윤희가 읽는 편지로 시간을 돌아보며 사실을 알려준다. 지난 시간은 고통으로 남은 주어진 형벌이라 여겼다는 말을 들으며 편하지 않은 삶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딸이 서울로 진학을 하면서 이사를 하고 작게나마 꿈을 가지고 바람을 비춰낸다. 어둡지만은 않은 희망을 꿈꾸는 모습을 보고서 생에 대한 밝음을 노래하는 듯하다. 마치 과거를 덜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뜻을 드러내듯이. 잘못한 것은 아니나 자기의 과오를 덜어내는 것은 어렵다. 잘못이 없다는 말로 치유를 끝낸 듯이 보인다. 마음을 덜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뭐든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우연히 인생 영화라는 글을 읽고서 관심이 생겨 보게 된 영화였다. 왜 그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 모르나 가슴속에 응어리를 갖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를 살면서 너무나 많은 퀴어 영화를 대하는 기준도 변한 듯싶다. 그만큼 잦은 노출로 다양성을 인정받고 의식의 변화를 알게 된다. 순간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성에 대한 정체성을 겪는지 궁금해졌다. 함부로 인정하지 못하고 반대하면 큰일이며 촌스럽다는 말도 떠올랐다. 우리 세대 기준에서 보면 소수자에 대한 기준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듯 강요하는 인상과 길들인다는 느낌이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이야기의 진행이 억지스럽다는 느낌과 다른 결말이었으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다. 리뷰를 작성하면서 좀 더 공익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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