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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Oct 01. 2022

"인생의 모든 순간 책이 있었다."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2015,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경어체를 쓰고 있다. 작은 표현들과 더불어 어떤 책을 읽고 어디에 꽂혀 무슨 창작으로 나아갔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평생 읽는 일이야말로 자기의 숲을 가꾸고 키워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제목이 주는 다소 진취적 성향의 표현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읽어내려 갈수록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폭이 깊어진다.


십육 세 때 읽었던 책을 기점으로 번역한 책이 주는 즐거움과 한 교수를 향한 마음으로 불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을 3년에 한 번씩 작가의 작품들과 깊은 만남을 추구하며 오로지 그의 사상과 언어, 표현들을 연구하고 받아들였다. 그런 일이야말로 자기 생각과 문호들을 동일시하며 받아들이고 나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으리라. 한 작가의 책을 줄곧 시대별로 읽어가면 그의 생각의 변화와 마주하며 사고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한다. 제대로 이런 독서법을 실천하고 쓴 작가와 만날 수 있다.


25년간 자기의 기록을 돌아보고 오십에 들어서야 결과에 대한 정리를 시작하면서 다짐을 했다. 기 형의 모델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는 맹세를, 내 영혼은 수많은 곳으로 가겠지만 언제나 인공 호수에 생긴 작은 섬으로 돌아오리라 여겼다고. 나도 그런 곳이 있는지, 지천명이 된 지금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가고자 하는지 고민이다. 얕은 지식이 주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도 어쩌면 이런 표현과 사고를 할 수 있을까 감탄을 한 적이 있다. 훔치고 가지고 싶은 표현들을 모아 내 것으로 만들어 오고 싶지만 때론 그런 것들조차 욕심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단테의 《신곡》, 《오디세이》, 《허클베리핀의 모험》, 엘리엇, 랭보, 예이츠, 포 등의 시집이야말로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책이 쭉 나열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고 귀히 대접받지 않는 작품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이런 고전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외국어라는 이질감에 저절로 책을 내려놓곤 한다. 번역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찾을 수 있게 인도하고 있다. 단어 하나가 주는 다채로운 뜻과 작가의 생각,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탐구의 영역은 아무도 말릴 수 없는 탐험의 길이었으리라. 새로움과 만나고 문호와 마주하며 시대와 물리적 거리, 시간과 동서양을 떠나서 깊은 유대감을 가졌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독再讀'을 하지도 않거니와 시간 낭비라 여기는 때에 전신운동에 비교해 메시지를 준다. 그때는 발견하지 못한 말과 새로움, 전에 지나쳤던 것과 그 순간 가졌던 경험이 떠오르는 작업이라 한다. 나는 얼마나 재독을 했던가. 심지어 다시 읽어보고 싶던 책이 있었나 싶다. 최근 친구의 선물로 읽었던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먹었으나 아직까지 손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화자가 말하듯이 재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도 남다를 것이다.


읽다만 단테의 신곡과 오디세이, 예이츠의 시집 등 모든 것을 다시 읽어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또한 고전이 가지는 위대함에 한발 더 나가고 싶다. 읽음으로 해서 존재하고 살아있고 성장하는 시간들이라 말한다. 인생의 모든 순간 책이 있었다고 회고할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오로지 읽고 쓰는 삶 앞에 왜 읽어야만 하는지 살며시 알려주는 책이다. 깊어가는 가을 하늘처럼 삶에 깊이 들어온 문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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