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림 Oct 24. 2022

배추부침개 드세요.

비 오는 날의 부침개 타령

"후둑후둑"

"쏴."

"촤르르르."


갑자기 빗줄기 소리가 세졌다. 남편은 비가 오면 부침개를 찾는다.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지 늘 부침개를 입에 달고 산다. 안 해준다고 삐지고 먹고 싶다고 보채고 날마다 부침개 타령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지만 매일같이 어떻게 기름에 지진 부침개를 먹을 수 있나. 주로 부추와 김치, 배추 부침개 이렇게 세 종류를 선호하며 해달라 한다. 밤에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아무 때나 기름 냄새 풍기며 지지는 것을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부침개 거리가 없으면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어제 남편은 운동 후 배추 한 통을 사 왔다. 조그만 알배기였는데 전날 마트에 가니 싱싱하지 않은 게 오천 원이나 하고 배추 한 통엔 구천 몇백 원가량 해서 그냥 왔다. 근데 어찌 알았는지 알아서 사 오셨다. 그러곤 하는 말이 "얼마나 먹고 싶으면 이렇게 사 오겠나?" 한다.


비 오는 날 배추를 씻고서 줄기는 살짝 삶아 부드럽게 만들고 반죽에 배춧잎을 담가서 프라이팬에 올려놓는다. 쏴 하는 소리를 들으며 지글지글 기름 소리와 익어가는 소리가 난다. 배추부침개가 쌓이니 부추도 먹고 싶다 해서 다듬어 씻은 부추로 마지막 반죽에 넣고 섞어서 부쳐낸다. 한번 먹어보라 권하는 듯하더니 이내 간장, 고추장을 섞은 양념장을 만들어 콕 찍어 드신다. 우리 집 양념간장은 남편만 입맛에 맞게 알아서 만드는데 고추장에 간장을 섞은 양념장을 만들어 먹는다. 세월이 가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말을 안 한다. 부침개를 부치느라 입에 넣을 새도 없는데 남편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연신 드신다. 그렇게 맛있을 일인가. 기름 냄새 맡고서 부치는 부침개는 적게 부쳐도 어쩐 일인지 입맛에 당기지 맞는다. 나와 남편의 식성이 다르니 어쩌랴.


얇고 얌전하게 배추부침개를 부쳐서 접시에 쌓아 놓고 보니 이쁘다. 배추 부침개는 모양이 예쁘기도 하고 배추의 시원한 단맛이 우러나와서 식어도 맛있다. 남쪽 지방 사람들은 늘 부침개를 달고 산다. 바로 해서 먹으면 따뜻하고 식으면 식은 대로 그냥 차게도 먹는다. 처음엔 차가운 부침개를 먹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밀가루와 기름이 범벅이 된 전은 차게 먹으면 소화가 덜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데워줄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찬 것을 그냥 먹고 자라서인지 아직도 찬 부침개를 좋아한다. 오늘은 배추 사이즈가 작기도 하고 많지도 않아서 작은 팬에 부쳤더니 부침개가 얌전한 모양을 하고 있다.


경상도는 비교적 밀가루 사용량이 많다. 늘 국수며 부침개를 달고 사는 지역문화가 남아서 그렇다. 별 특별하지도 않은 흔한 야채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기름에 둘러 부쳐먹는 문화야 말로 경상도의 오래된 문화일 것이다. 솥뚜껑을 뒤집어서 크게 부쳐내는 부침개는 얇게 손반죽으로 반죽을 두르고 야채를 올려 모양내는 게 예술에 가깝다. 부침개를 뒤집을 때의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기술이 필요한 지 알 수 있다. 아무나 손쉽게 뒤집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만들어 놓은 반죽대로 기술적으로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난 그런 시골 성정과 같지 않게 가스불에 작고 얇게 부쳐내지만 이내 맛은 비슷한가 보다. 그렇게 국수며 야채전을 즐기던 습성이 남아서 날마다 전 타령을 하는 걸까. 역시 어려서 먹은 음식이야 말로 평생에 걸쳐 입맛을 좌우하나 보다.


비가 후드득 내린다. 이 비가 멈추고 나면 찬바람이 불어 갑자기 불어닥친 가을이 더 깊어갈 것이다. 어쩌면 아침 기온이 훅 떨어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문득 깊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의 모든 순간 책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