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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Oct 28. 2022

'노래의 날개 위에' 보내리

가을이 지나고 있다.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딸을 기다리느라 지하철 입구에 일찍 도착해 찾은 노래였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가 흘러나오는 순간 소프라노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엄마의 '미안해'생각났을까.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된 게.


오랜만에 엄마의 정규 검진이었다. 내과, 신경과 선생님 3분을 시차를 두어 예약을 했기에 진료 간격이 있었다. 지난주 당뇨 검사를 위해 병원 방문을 했었다. 진료일 앞서 미리 검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혈액검사 후 소변검사를 한다며 종이컵과 시약 통 두 개에 라벨을 붙여 준다. 엄마는 화장실로 가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종합병원이라 사람이 밀리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애를 써도 성공을 못했는지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신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침에 소변검사를 한다 알렸건만 아침에 잊고서 병원 간다고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혈액검사는 공복에, 그리고 식후 1시간 뒤 이렇게 두 번 한다. 혈액검사만 마치고 내가 나가봐야 할 시간이 가까워서 돌아와야 했다.


오늘 엄마의 검사를 위해 진료 두 시간 전 도착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몸의 기능이 젊은이들 같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먹은 대로 알맞게 작용하면 좋겠지만 화장실 가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검사를 하러 온 많은 환자들이 병원만 아니라 화장실에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을 뒤로하고 계속 혼자만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오늘도 엄마는 오랫동안 애쓰며 화장실을 들고나고를 반복하다 말았다. 이것 하나 검사 항목에서 빠진다고 약 처방을 안 하지는 않을 터, 더 이상 애쓴다고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오늘도 패스를 하는 게 맞다. 그렇게 기다리다 의사를 뵈었다. 두 번이나 애썼지만 못했다고 하니 웃기만 하신다. 선생님도 별말을 안 하셔서 애쓴 줄 아시나 보다 하는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과 진료 후 신경과 2분의 진료가 남았다.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예약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기다리다 보면 환자들의 밀려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 내과는 오전 진료였지만 신경과는 오후 진료만 있는 날이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대기해야 했다. 일찍 나오느라 나는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였지만 엄마는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와 점심시간이 되어도 끼니 드실 생각이 없으셨다. 지치기도 하고 입맛이 없기도 해서 대기하는데 자꾸 나보고 가서 밥 먹고 오라 하신다. 병원밥을 혼자 먹기도 부담스러워 괜찮다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훌쩍 시간을 넘겨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오후 첫 순서였기에 남은 약의 개수와 궁금했던 것, 바뀐 복약 방법과 지시사항 등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듣는다. 기다리는 시간에 비례해 의사를 독점하면 좋지만 잠깐의 짬이라도 묻고 싶었던 것을 문의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문진을 마치고 마지막 선생님을 뵙기 위해 다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번엔 약이 떨어져서 진료와 동시에 처방을 받고 특별 검사나 주문 사항 없이 끝났다. 그렇게 병원 진료를 마치고 차에 오르니 급 피곤함이 다가온다. 깊이 숨을 들이쉬고 출발을 하는데 엄마의 한마디.


"미안해."


종일 먹지도 못하고 엄마 옆에 붙어 있는 내가 안쓰러웠나? 갑자기 목이 막히고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꾹 눌러 담은 마음을 뒤로하고 출발을 하지만 엄마의 한마디가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다. 말은 안 해도 내 마음이 전해져서 그럴까. 아님 내 표정이 그랬을까.


"바쁘면 내려주고 어서 가라."


엄마는 내가 오늘 하루 비운 것을 모르시나 보다. 이미 4개월 전부터, 5개월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기운 없는 '미안해'와 일하러 가라는 말을 들려준다. 난 그런 딸인가 보다. 괜스레 하루 힘들게 보낸 보람이 없어져 버렸다.


이런 모습에 서글프기도 하고 서럽기까지 하다. 나이 든다는 게 이런 걸까. 마음을 제어할 수 없다. 눌러 담은 마음을 풀어볼 수도,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주차장을 나오는 순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 펼쳐진다.


아마 지금 상황과 반대된 노랫말이 나를 어루만져서일까. 행복이 가득한 아름다운 나라로 가고 싶어서였을까. 딸이 볼까 어두운 차 안에서 몰래 쓱 닦고 아무렇지 않게 맞이한다. 감추고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게 늘어간다는 것은 아픔을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노래 한 자락에 내 마음도 가벼운 바람처럼 날려 보내고 싶어졌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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