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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03. 2022

늦은 가을 산책

사진을 보고 생각한 문장 한마디(초단편)


"허리가 어디야?"

"무슨 허리?"


옆에 기대고 보니 그의 허리가 안 보인다. 어쩐지 최근 찬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살이 찐 것 같더라니. 만져지는 것은 죄다 살이라는 거 이게 사실인가. 출렁이는 뱃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에 목이 메어 온다. 어떻게 뺀 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일까. 지난여름 동안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고 식이조절을 통해서 겨우 기본 체중으로 감량을 해놔서 볼 만했는데 이제는 다시 전처럼 물컹한 살이 출렁이고 있다. 심지어 팔을 들어 안아보니 안아지지도 않고. 물론 그이가 나보다 키도 크지만 몸매도 더 좋았다. 그런데 이제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그러니 허리나 옆구리가 어디 있는지 잡히지는 않고 앞으로 처진 뱃살이 도드라진다. 더구나 그의 혈압이 나를 압박하고 있다. 집안 내력이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하는데 말이다. 어쩐지 지금 그의 상태가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저나 가을의 문턱에서 낙엽이 떨어져 내린 산책길은 쓸쓸함이 그지없다. 어쩐지 지금의 우리 상황을 우회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슬프기까지 하다. 삶의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든 나로서는 돌아볼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과 한편 남은 시간이 살아간 날보다 더 적다는 이유일 테니까.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는 것일까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는 시간이 괴롭거나 힘든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녀들이 각자 자기의 입지를 두텁게 하고 잘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같은 기쁨과 다이내믹한 즐거움 가득한 일이 많지는 않다. 정신없이 살아가기 바쁜 시기였으니까. 그럼에도 돌이켜 보면 살아볼 만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월리를 데리고 나가는 산책길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이 시간이 제격이다. 요즘엔 월리마저 산책을 반기지 않는다. 우리보다 먼저 퇴행성 질환인 관절염이 왔다. 개의 나이가 12살이면 우리보다 더 많은 84살이란다. 관절염이 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 걷는 게 힘들어 보이니 다음부턴 산책을 일부러 시키지 말아야겠다. 물론 건강을 생각해서 데리고 나왔지만 안질환도 있고 관절염으로 인한 운동 부족이 더 심각하다. 걱정이 앞서지만 우리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정신적으론 안정감이 더 있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론 움직이는데 제약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니까. 월리 입장에서야 당연한 결과다.



얼마 전까지 알록달록하던 단풍이며 공원을 수놓던 수많은 색깔의 낙엽이 자취를 감추고 떨어져 버렸다. 인생의 뒤안길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기 그지없다. 계절의 지나감도 이렇게 빨리 가버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오늘따라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 것 같은 것이 내 마음 때문만은 아니겠지. 가을은 어쨌든 서럽게 아름답고 찬란하다. 마치 우리의 지나온 시간과 같다고나 할까.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내일은 목도리라도 두르고 나와야겠다. 하루하루 날씨가 변해가는 게 실감이 난다. 남편이 잔기침을 하는 걸로 봐선 따뜻한 생강차 한잔 끓여야겠다. 총총걸음으로 바삐 움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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