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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05. 2022

'공수래공수거 空手來 空手去'랍니다.

가을이 지나 갑니다.


"자기 나 사랑해?"

"아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글쎄?"

"속았어, 속았다고."

"훗!"


남편이 빨래를 털어주려 나왔다. 심술이 난 양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다. 출장을 간다며 일주일 간 집을 비운단다. 이래저래 집에 사람도 없는데 장기간 집을 비운다는 것은 혼자 남게 된다는 얘기다. 낮이야 그렇다 쳐도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지내야 다는 것은 참 지루하기도 하지만 강제적인 외로움이 주어진다는 게다. 더구나 가을이지 않나. 찬란하게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서럽게도 슬픈 가을이 가고 있다.



아마도 나는 지독히도 혼자이길 싫어하는 게 아닐까. 어릴 때 가을이 되면 바람 불어 창문이 덜컹거리며 흔들리던 소리가 생각난다. 그때는 나무로 된 창틀에 한 겹 유리창이라 창호지 보다야 낫지만 바람을 막아줄 정도의 내구성은 없었다. 내 기억 속 가을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시절이 아닌 창을 흔드는 휘몰아치는 바람과 쓸쓸함이 가득 찬 저녁나절이 떠오른다. 그렇게 혼자라는 말을 외롭다는 말보다 몸으로 먼저 익혔다. 내 몸 어딘가에 홀로라는 언어의 뿌리가 자리를 잡았는지 외톨라는 것을 새기면서 견디기를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지나왔다. 삶이라는 게 가족이라는 틀에서 움직이고 살아가게 되지만 언제나 외롭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성숙해가나 보다.



벼는 익어가면서 고개를 떨구고 사람은 세월을 더하면서 허리 숙여 겸손을 말한다. 내 몸의 중심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중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독립은 오롯이 내가 혼자서야 한다는 말이었다. '공수래 공수거 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조차 진리이지 않나. 어차피 홀로 사는 게 맞다. 그럼에도 같이 부딪치고 어울려서 살아야만 하는 인생이다. 때론 같이 밥 먹어 줄 온정과 사람 냄새나는 온기가 그립다. 갈수록 외롭다는 걸 계절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가을이 간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듯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다. 지나가는 가을을 애달파 하지 않으리. 성큼 다가온 가을의 끝자락을 잡아 보려 하지만 쿵쿵 다가오는 겨울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게 진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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