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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11. 2022

마음에 연고를 발라요.


손가락이 따끔하다. 왜 그런지 모르고 있다 손을 씻는데 보니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끝이 쓰라리다. 수업 시간에 쿠프(빵에다 칼로 금을 긋는 작업)를 넣으려 칼을 챙기던 중 살짝 스쳤나 보다. 손을 씻는 내내 보이지도 않던 상처가 물이 닿으니 손끝을 파고들어 콕콕 찌른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 상처였건만 별것 같지도 않은 상처가 아리게 한다.



평소 칼이나 날카로운 도구를 많이 사용하기에 알게 모르게 잘잘한 손의 상처가 많이 생긴다. 설명하다가 시연을 하는데 살짝 정신을 팔고 선 칼에 베인 적도 있다. 그만큼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때론 안드로메다로 가출한 정신 때문에 내 손이 남아나질 않는다. 젊어서야 꼭 촌스러운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나서야 설거지를 했다. 어느 순간 수업 중간에도 맨손으로 그릇을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싫든 좋든 생기는 작은 흔적들로 손에 물 마를 새 없는 나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어간다.



피부가 유달리 얇고 예민해서인지 한낱 종이에 베이기도 잘한다. 자세히 보면 종이도 칼처럼 단면이 날카롭고 예민하단다. 그래서였는지 종이에 베인 상처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쓰라리다. 가볍고 얇은 종이 조각일 뿐인데 왜 이렇게 아플까. 살면서 가벼울수록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큼 아픈 게 떠올랐다. 툭 던진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가, 문득 고개 들어 마주친 눈길이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이 나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종이로 베인 상처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쓰라림이 남아서였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종이 한 장, 그냥 종이일 뿐인데 어째서 아프게 할까.



남편은 결혼 전 어떻게 하면  고운손을 원 없이 잡아 볼까 했단다. 그래서 손 한 번 맘껏 잡아보려 결혼하자고 했다 한다. 이십 대야 가늘고 예쁜 손이라 잡아보고 싶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손에 일이 치이도록 감당해야 할 게 있지 않나. 혈관이 툭 나오고 전과 같이 예쁘기만 한 손을 가지진 못한다. 하물며 일하는 손이 물 마를 새 없는데 어찌 전과 같을까. 피부도 젊을 때 같지 않고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달리하는데 손의 감각만 전과 같은 것인지 아직도 작은 스침에도 상처를 입곤 한다.



어쩌면 내 마음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고 있지만 단단해지진 않았나 보다. 따끔거리는 통증은 아물어 가면서 두꺼워지고 스스로 치유되어 흔적을 남기곤 하니까. 지금 내가 가진 작은 상처로 인해 신경 쓰이고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말로, 서늘한 눈빛으로 아픔을 주었을까. 내가 주었을 많은 통증들이 내게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것만 같다. 손가락 끝 보이지도 않게 작은 틈으로 밀려드는 수분으로 인해 아프다. 그러나 이내 아물고 며칠 지나면 언제 아팠냐며 지금을 잊을 것이다. 산다는 건 어쩌면 이런 작은 흉터가 모여서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때론 딱지가 앉거나 고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날마다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게 아닐까.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선 잠들 무렵에야 생각났다.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면 더 빨리 아물지 않겠는가. 내 마음에 생긴 상처도 빨리 아물라고 작은 연고라도 발라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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