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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17. 2022

게장은 딸 생일선물

엄마맘 알지?


게를 샀다. 곧 딸의 생일이 가까워 그동안 부족한 엄마 노릇을 하려던 참이다. 지난주에 일이 바빠 짬이 나지 않아 시장에 들르지 못했다. 이번 주 딸의 생일이 다가와 더 이상 미뤄 둘 수 없기에 수업 후 노량진에 갔다. 게를 사고 건너편 건물에 가서 필요한 생강과 청양고추를 샀다. 쪽파가 하도 싱싱해서 김치를 담그려 쪽파도 구매했다. 게는 무겁고 통통한 암게로 샀다. 가격이 비싸도 안 살 수 없기에 멀쩡하고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 중간 정도 무거운 놈으로 골랐다.



집에 와서 사과, 배, 마늘, 생강, 양파, 청양고추, 대파를 다듬고 씻어 알맞게 잘라서 다시마와 간장을 붓고선 다린다. 감초 한쪽과 통후추, 건고추, 고추씨를 넣고 낮은 불에서 끓인다. 뭉근하게 야채가 끓기를 기다리며 육수가 되는 동안 김치통에 마늘, 생강, 청양고추를 썰어  게를 손질한다.



게가 튼실하니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듬뿍 채워 와서 그런지 냉동실에 넣지 않아도 이미 기절해 있어서 손질하기 수월하다. 새 칫솔을 꺼내서 게 다리의 안쪽 구석구석 손 안 닿는 곳까지 싹싹 흐르는 물에 씻어준다. 가슴 쪽의 게딱지 안쪽까지 신경 써서 닦아준 뒤 채반에 받쳐서 물기를 빼준다. 게가 살아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드나 게는 아는지 모르는지 거품을 물고 뱉어낸다. 그때 다리를 자꾸 팔딱거리면서 나 아직 살아있다고 내게 표시를 한다. 다리 구석구석 끝을 잘라주어야 되나 이때 자르면 발악을 해서 피곤하니 인정을 베풀어 익은 뒤 잘라주기로 하고 살려둔다.

 


통에 손질한 마늘, 생강, 고추를 넣고 차곡히 게를 넣고 선 정종을 한 컵 살짝 뿌려준다. 그러면 비린내도 잡고 살짝 기절한 게가 먹게 된다. 육수가 끓으며 야채가 물러지면 즙이 모두 나와 물을 섞지 않아도 야채수 만으로 간이 맞다. 마지막으로 정종을 붓고 살짝 끓여 낸 뒤 국물만 체에 걸러서 식힌다. 충분히 식힌 육수를 게가 있는 통에 붓는다. 이때 게는 살아있다고 집게발을 흔들며 나오려 애쓴다, 그래서 게는 가슴이 위로 오게 뒤집어서 놓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양념이 잘 스미고 살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된다. 이때 기절했다 깨어난 녀석들이 자꾸 움직이며 탈출하려 애쓴다. 살아있는 들은 자기에게 위협이 가해지는 걸 아니까 자기의 다리를 자르기도 한다. 참 안타깝다. 기껏 손질해 놓은 게 다리가 잘려나가다니.



어쩔 땐 내가 무섭다. 게는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데 나는 게 다리가 손실된 게 아깝다고 느끼다니. 살아있는 생물이라 조심히 다뤄야지 하는 맘보단 멀쩡하게 자기의 모습을 유지하길 바라고 있다. 딸이 맛있게 먹어 줄 생각에 나는 밥상 차릴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게장 해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다. 한동안 안 해주었던 게 생각나 이번엔 약속을 했다. 이래야 나도 몸을 움직여서 약속을 지키려 시장에라도 갈 테니까. 나의 게으름이 딸을 위하는 맘보다 먼저였나 보다.



평소 딸은 비리다고 아침엔 생선을 굽지 말라며 비린 것을 유달리 싫어한다. 그런 입맛에도 좋아하는 게 있었으니 게장과 조기였다. 딸 입맛엔 그래도 비싼 게 최고였다. 양념게장을 좋아하는 내 입맛보다 딸의 선호가 먼저인 게 엄마 아니던가. 오늘도 게 간장 육수를 다리면서 몇 해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땐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였고 애들의 먹성이 좋은 중고등 시절이었다. 친구의 부탁으로 게장을 한통 듬뿍 담아서 주고 값을 받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과 나눠서 구입했다 한다. 다른 모임에선 게장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해서 다른 식구들의 엄지 척을 받기도 했다. 그때 남편은 게장 집을 차리자고 했다. 그냥 웃었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인지.



오랜만에 게장을 담아서 냉장고에 넣었다. 게 국물에 꽃이 피기(국물에 하얀 꽃 같은 막이 생기는 것을 말함) 시작하면 익어가는 것이다. 며칠 있으면 딸의 생일에 맛있게 익은 게를 맛볼 생각에 들떠 벌써 입맛 다실 생각에 흐뭇하다. 이게 뭐라고 여태껏 안 해주었을까. 한나절이면 되는 일인데. 그동안 나의 게으름에 미안함마저 든다. 이젠 나를 위해서라도, 그동안 못 해온 일들을 마무리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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