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리뷰를 보고 궁금해서 보게 된 작품 '나기의 휴식'. 점차 무더워지는 지금과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아껴두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팍팍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로 자신을 잃어가는 주인공 '나기'의 성장 이야기다. 나기는 언제나 남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때 그 상황, 분위기에 맞춰 남들이 원하는 것을 따를 뿐이다. 심한 곱슬머리인 나기는 그 모습을 숨기기 위해 1시간 동안 머리를 펴고 출근한다. 회사 동료가 대신 업무를 처리해 달라는 무리한 부탁도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남들 눈에 나기는 소심하고 부려 먹기 좋은 사람, 줏대 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그런 나기에게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남자친구 '신지'가 있었다. 남자친구는 자신과 달리 회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나기가 눈치를 보는 대상으로 신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신지의 말투와 행동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동시에 그런 신지에게 늘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동료들과 자신을 험담 하는 신지를 본 나기는 과호흡으로 쓰러지고 만다. 나기가 다시 깨어났을 때, 남자친구를 비롯한 회사 동료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연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잠한 핸드폰을 본 나기는 이전과 달라지기로 마음먹는다.
나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는다. 이불 하나 들고 도쿄 외곽의 한적한 동네로 떠난다. 새로운 보금 자리는 낡고 허름한 아파트, 그리고 낯선 아파트 주민들. 정처 없이 무작정 도망친 이곳에서 나기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새로운 삶을 산다.
이 작품에는 '분위기, 공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공기를 읽는다는 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이는 곧 눈치를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여 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게 센스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곧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미묘하게 변하는 공기를 읽기 위해서 타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행동의 결정권은 타인에게 넘어가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자책하고 만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나도 나기만큼은 아니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았다. 눈치를 보다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한 적도 꽤 있었다. '괜찮을까?'라는 생각으로 놓친 것들도 여러 개였다. 그래서 위축된 나기의 모습을 보며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이러한 내 모습을 바꾸고 싶었고, 나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해 보면 별거 아닌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하면서.
타인에게 비칠 '나'를 보느라 온전한 '나'를 잃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무슨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변명을 늘어놓은 채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그렇게 좁아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다 삶의 소중함과 가능성도 함께 잃을 수 있다. 사람들과 다정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공감하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보지 못한 세상이 얼마나 무궁무진 한지.
공기는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뱉어야 편안한 법이다. 밀려오는 숨마다 모든 걸 파악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자.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