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내성과 고독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다.
어릴 적 엄마는 유난히 책을 사랑했다. 할아버지께 선물 받은 책을 시작으로 학교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엄마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책 속 세계를 여행했다. 엄마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몇 권의 책을 함께 이야기하셨다. 그중 하나가 『데미안』이었다.
학창 시절 엄마가 읽은 『데미안』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 읽게 되었다. 다양한 번역본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 책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이 책을 옮긴 전혜린은 한국 여성 최초 독일 유학파 독문학자로서 그녀가 번역한 데미안은 독일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번역본이다. 이 책은 그녀의 타계 60주기를 기념하여 탄생했다.
『데미안』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과정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에 만난 막스 데미안을 통해 내면의 세계에 깊이 파고드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터득해 자신만의 길로 나아간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으며 혼자만의 고뇌와 고독으로 빠지는 길로써 힘겨운 내면의 투쟁을 일으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이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p.158]
자아를 탐구하고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는 선과 악을 모두 갖고 있는 아프락사스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선과 악은 구분 짓는 것이 아닌 함께 공존하고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다면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싱클레어는 유년기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선과 악을 모두 경험하며 이로 인한 내적 충돌을 겪는다. 따뜻한 양친의 사랑, 화목한 가정, 질서가 잡힌 도덕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싱클레어는 안전과 안정을 확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폭력과 거짓, 유혹과 욕망 등 금지된 것들이 난무한 울타리 밖에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 결국 어두운 세계로 발을 딛게 된 그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가운데에 서서 내면의 불안감에 휩싸인다.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정말로 너의 본질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행동하면 되는 거야. 그 이외에 아무 방법도 없어. 네가 너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너는 유령도 발견하지 못할 거야. 내 생각으로는. [p.206]
나에게 유쾌한 기분을 준 것은 나 자신 속으로 내가 전진해가는 것, 나 자신의 꿈과 사랑과 예감에 대한 신뢰가 증가하는 것, 내 속에 내가 간직하고 있는 힘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는 것 등이었다. [p.213]
이를 구원해주는 결정적인 인물이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프란츠 크로머의 조종 아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소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으로 절망적인 순간으로부터 벗어난다. 남들과 다른 선구자의 면모를 가진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기존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이는 곧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이었다.
의심하지 않았던 기존의 종교적, 도덕적 관념과 세상이 정해 놓은 질서에 순응하지 않길 바랐다. 당연시 여겼던 모든 것들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 틀을 깨부수길 바랐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오랫동안 내면의 세계로 집요하게 들어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탐구하며 파고든 끝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이로써 자신에게 오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른다.
이는 모두 깊은 내성(內省)과 고독으로 이루어낸 결과이다.
나를 완성하고, 나의 길을 발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다. [p.84]
성장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 속에 확고해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길이든, 더듬어 전진하는 단 한 가지 ‘직분’밖에는 아무런 직분도 없었다. [p.224]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아트인사이트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