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나는 지금 끌려가고 있다. 내 꼴이 마치 형사에게 연행되는 범죄자 같다. 이 인간은 힘도 좋지. 팔짱 하나 꼈을 뿐인데 옴짝달싹을 못 하겠다.
부끄럽다. 나는 늘 솔직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이 솔직하지 않으면 경멸하면서 말이다. 물론 속으로만 생각한다. 드러내는 건 내가 아니니까. 지금, 이 순간도 내 속은 아우성치고 있다. 그만 좀 놓아달라고!
휴... 드디어 풀려났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상쾌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일단, 담배 한 대 피웁시다."
"그러세요."
나는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는 담배를 꺼내어 전자담배 기기에 꽂았다.
"담배 냄새 싫지요?"
"네, 뭐."
"미안합니다, 흡연충이라. 더 떨어져도 됩니다. 그래도 저는 길빵은 안 합니다."
'자기가 떨어지면 되지, 왜 나한테 명령... 아니다, 참자. 떨어지란다고 떨어지면 사회성 없는 놈으로 보일 테니까. 또 또, 저 웃음.'
"전자담배는 냄새가 많이 안 납니다. 약간 좋은 향도 나고."
"그러네요."
나는 솔직하지 못한 말을 하고는, 괜히 어색해서 폰을 열어 메신저를 확인했다. 연락 올 사람도 없으면서 말이다. 역시나 빨간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 재밌는 거 봅니까?"
"아뇨."
"갑시다."
그는 꽁초를 주머니에 넣더니 또 내게 팔짱을 끼려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팔을 뺐다. 이 사람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우리 태윤 작가님, 참 부끄러움 많으시다. 장난입니다, 장난."
장난이건 뭐건 '우리'라고 하지 마라. 미치도록 싫으니까.
"영화 [범죄와의 전쟁] 봤습니까?"
그가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봤죠."
"행배 금마 성격이, 원래 어릴 때부터 그래요! 지삐 몰라, 씹새끼."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욕설에 몸이 뒤로 밀릴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와 사투리 어렵네. 저는 강릉 사람이라 처음 부산 왔을 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로 사투리 공부했죠."
"그래요?"
"김판호가 최익현한테 이런 대사를 합니다. [최 사장님하고 내하고 안 지가 몇 년인데, 말이 이래 어색해가 우짜노. 오늘부터 편하게 이름 부르이소. 지도 마 행님 하께예] 이때부터 둘은 말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됩니다."
"음..."
"우리도 말이 이래 어색해서 우짭니까? 동갑인데."
아! 이 말을 하기 위한 빌드업이었구나. 근데 나는 말 놓기 싫은데 어쩌지. 내가 대답이 없자 그가 물었다.
"싫습니까?"
"싫다기보다는, 아직 잘 몰라서."
"그래예? 마이 불편하신갑네예."
그는 또 김판호 흉내를 냈다. 나는 그의 끈적함이 징그러우면서도 우스웠다. 사람이 어쩜 저리도 적극적일까. 내가 희미하게 미소 짓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라믄 마! 천천히 놓읍시다."
우리는 해변가를 걷기로 했다. 문화센터가 광안리 역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쪽으로 가다 보니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가 보였다. 우리는 음료를 사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카페 앞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재건도 봤는지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어! 저 사람, 그 사람 아닌가? 좀비?"
"맞는 것 같네요. 루네 작가님."
오늘 함께 수업들은 루네 작가였다. 그녀는 카페 직원에게 음료를 받아 바다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덩치 큰 여자가 곁에 있었다. 재건은 의문 가득한 투로 말했다.
"뭐지? 트젠인가?"
그러고 보니 덩치 큰 여자가 아니라 여장남자 같았다.
"남자네. 트젠이면 몸이 저럴 수가 없지."
그의 말대로 루네 작가와 함께인 사람은 웬만한 남자보다 근육질이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씨름 선수 뺨치게 발달해 있었다. 상체는 어찌나 굵은지 마치 광산에서 황금 캐는 드워프 같았다.
"어? 좀비?"
재건은 좀비라고 말하며 눈으로 동의를 구했다. 그의 갈매기 눈썹이 한껏 치켜 올라가 있었다. 나는 다시 그들을 봤다. 루네가 빨리 걷자, 옆 사람도 속도를 높였는데, 발목이 꺾일까 봐 조심조심 걸었다. 몸에 힘을 잔뜩 줘서 그런지 온 전신이 뒤틀렸다. 그 움직임이 영화 속 좀비와 비슷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걷는 게 익숙지 않아 보였다.
"아까 자기 언니 얘기했잖아요. 신발 바꿔 신으라고 했나?"
"맞아요. 언니가 잘 못 걸어서 단화 신으라고."
"그럼 언니가 좀비인 건가?"
"글쎄요."
그들을 보며 걷는 사이 우리는 카페에 도착했다. 재건은 루네 일행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보았다.
"제가 걷자고 했으니까, 음료는 제가 살게요."
"아니요, 각자 계산해요."
"제가 할게요."
젊은 여성이 우리를 보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재건은 그녀를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오... 원두가..."
그는 여성 때문에 감탄사를 흘렸으면서, 메뉴판을 흘깃거리며 원두 핑계를 댔다.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물었다.
"여기 아메리카노 원두가 과테말라산인가요?"
"아닙니다. 저희 아메리카노는 브라질과 콜롬비아 원두를 베이스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배합하여 쓴맛을 초콜릿티하게 표현한 블렌딩입니다. 묵직한 바디감과 풍부한 질감을 자랑하며, 한국인 입맛에 맞는 맛을 구현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오, 무슨 인공지능처럼 대답하시네요."
"와, 손님 정말 핵심을 찔렀어요. 그럼요. 사장이거든요."
"사장님이셨구나. 너무 어려 보여서 알바생인 줄 알았어요."
"헤헷."
"헤헷?"
"귀척 좋아합니다."
"그렇..."
나는 그가 당황해하자 통쾌했다. 그래, 당신이라고 늘 당당할 순 없겠지. 하지만 재건은 금세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렇다면 저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묵직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풍부한 질감의, 브라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커피를 맛보고 싶으니,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탁합니다. 작가님은?"
"저도 같은 걸로."
"두 잔 부탁합니다. 냉커피 플리즈."
"4,000원입니다."
우리는 귀척 사장님이 준 커피를 받아 들고 걸었다. 이제 루네 작가는 보이지 않았다. 재건은 뭔가 불만이 있는지 혼자 구시렁댔다.
"뭔 놈의 커피 원두가 그렇게나 많은 거야? 세상은 참 의문투성이다, 투성이."
"그래도 맛은 좋네요. 한국인 입맛에 맞나 봐요."
"투성이? 투성이란 말 웃기지 않습니까? 투성이, 투성이."
"네, 뭐."
"투성이, 하하하, 투성이."
또 시작이구나.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즐겁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웃지 않았고, 그는 계속 웃었다. 대화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자 차라리 속이 편했다. 우리는 곧 해변가에 다다랐다.
날이 지기 시작해서인지 바닷물이 컴컴했다. 광안대교에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로등 빛과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밝혀주었다. 재건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혼잣말했다.
"캬, 이런 건물 하나 있으면 월세는 얼마나 들어올까? 좋겠다, 건물주는. 나도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돈 벌면 건물 사려고요?"
"꼭 건물이 아니더라도 돈 많으면 좋지 않습니까.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성공하고 싶네요."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대꾸 하지 않았다.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막둥이거든요. 누나랑 형이 있는데 나이 차이가 크게 납니다. 엄마는 지금 병원에 있는데, 제가 막둥이인 걸 기억할 때 성공한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미안합니다. 어두운 얘기 해서."
"괜찮아요."
"근데 태윤 작가님은 정확히 어떤 글을 쓰려고 합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너무 숨기신다.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아까 말했듯이, 내 안의 다른 나에 대해 쓰고 싶죠."
"구체적으로요."
"그게 다예요."
"에이, 실망이다. 더 있으면서 안 알려주시네. 나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됩니다."
아휴... 그래. 당신 말이 맞다. 나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나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이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도 되는지 고민하는... 나로서는 배척받지 않을 대답을 고를 수밖에 없다. 내가 뱉은 말에 타인의 반응이 달라지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가 왜 돈 많이 벌고 싶은지 솔직하게 말하면, 작가님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에게서 딜이 들어왔다. 어떡하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는 틈을 주지 않았다.
"저는 말입니다.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사업이요?"
"일본 시골에 빈집 많다는 기사 본 적 있으시죠?"
"네."
"일본은 지금 빈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될 겁니다. 바로 빈집을 활용한 사업이죠. 수업 때, 선생님이 한 말이 맞습니다. 솔직히 글 써서 돈을 어떻게 법니까? 극소수의 사람 아니고서는 글 써서 돈 못 법니다. 하지만 사업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빈집으로 어떤 사업을 하려고요?"
"인간의 공격성과 관음 욕구를 자극하는 거죠. 인류 역사는 전쟁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싸움과 투쟁이요. 현대 스포츠가 결국 전쟁과 투쟁의 대체물 아닙니까. 운동선수는 투사가 되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관중은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개싸움을 구경하죠. 공격성과 관음증!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싸움 구경은 스포츠로 대체가 되는데, 불구경은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 소멸과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빈집도 늘어날 거고요. 제 사업 아이템은 빈집을 누가 더 화끈하게 창의적으로 태우는지 가리는 대회를 여는 겁니다. 빈집 태우기 대회는 새로운 관광산업 개발과 일자리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회를 개최하려면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대회가 열리면 관광객이 올 테니까요. 내수시장 활성화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올 겁니다.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살고! 이 얼마나 꿈같은 일입니까. 인간끼리 겨루는 스포츠는 부상과 사망 위험이 있지만, 빈집에 불 지르기는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더 안전하고, 더 인간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불 지르기 대회? 안전하고 인간적? 제정신인가? 미친 인간 아니야?
나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건 잘한다고 늘 자신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오랫동안 그의 눈을 쳐다봤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작가님,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겁납니다."
"겁난다고요? 제가 더 겁납니다. 불 지른다고요? 제정신입니까. 인간적이라고요? 미쳤습니까. 당신 말이 진심처럼 들려서 더 무섭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제발 이야기 소재라고 해주세요. 제발요."
그는 한동안 나를 보았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후, 꼿꼿하던 그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 생각이 좀 과했던 것 같네요."
"과한 게 아닙니다. 해선 안 될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해선 안 될 생각입니다. 안 하겠습니다."
그의 사과에 나는 참고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몸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그가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 도움을 거절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력이 강한 그였지만, 이번만은 내 손짓 한 방에 뒤로 밀려났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호흡을 고른 뒤, 감정을 제거하고 말했다.
"정말 안 하실 거죠?"
"안 하겠습니다."
"실제 사업이 아니라 이야기 소재로만 쓴다고 약속하시면, 저도 제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실제가 아닌 이야기 소재로만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자, 그가 부끄러운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에 나도 웃음이 났다.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미친 듯이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걸었다. 웃음이 멎자, 나는 어깨를 풀었다.
"이제 제 차례군요. 많이 황당할 수도 있는데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보다 황당하겠습니까. 그냥 시원하게 해보십시오."
나는 말해준다고 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자 심히 망설여졌다. 하지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어렵사리 입을 뗐다.
"제가 미친 인간이 아니란 걸 꼭 기억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 이해합니다."
"알겠습니다. 후... 저는 보여지고 있습니다."
"보여지다뇨?"
"보는 걸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됐든,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에 보여지고 있고, 나도 그걸 보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귀신같은 거 말인가요?"
"귀신이라기보단, 조금 다른 차원 같아요."
"더 상세하게 묘사해 줄 수 있나요?"
"음... 제가 이 얘길 하면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에 참 괴롭습니다."
"이해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그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더는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어디에 좀 앉죠."
우리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봤지만, 저녁 시간이라 어디든 사람이 넘쳐났다. 마침, 광안대교가 점등됐길래 백사장에 가보기로 했다. 영롱하고 알록달록한 빛의 파장들이 바다 위로 갈래갈래 뻗어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유령처럼 밤바다를 떠돌았다.
[모든 이미지는 제미나이에서 생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