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아직 녀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가능한지조차도 모르겠다. 지금 녀석들에 대해 쓸 수 있는 건 관찰기 정도밖에 없겠지. 창작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사람이면 없는 재미와 감동도 뽑아낼 수 있겠지만, 나는 이제 시작하는 초보다. 옷도 입어본 사람이 잘 입듯, 이야기를 꾸미는 것도 기본기가 있어야 잘할 수 있겠지.
선생님은 왜 기초적인 작법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 걸까. 자유롭게 펼치는 상상력에 방해되기 때문에 형식적 이론 수업은 하지 않겠다고 했던가? 대충 그런 이유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늘 해왔듯이, 검열하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상상을 글로 옮겨볼까? 아니면 예전에 읽었던 작법서들을 다시 읽어 볼까.
아니, 아니야. 선생님이 시킨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사람들이 제출한 과제를 읽어 보고, 이론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말씀하시겠지. 수업 이틀 전이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제출해야 하네. 오늘 목, 금 토 일 월... 5일 남았구나.
어휴, 등신. 선생님이 나한테 좋은 말도 해주셨는데, 괜히 이상한 소리 해서 막판에 분위기만 망쳤네. 과제라도 열심히 해서 만회해 봐야겠다. 녀석들이 보이면 계속 말 걸어보자.
그런데 녀석들이라고 적으면 좀 이상하겠지. 개별적 이름이야 마음 가는 대로 짓는다고 쳐도, 그들을 통칭할 수 있는 용어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을까... 전에 재건이 요정이라고 했었지. 요정은 너무 뻔하지 않나? 그럼, 정령? 단어 자체는 요정보다 마음에 드는데 썩 내키지는 않네.
음... 요정과 정령을 포함한 제목을 만들어볼까. 의외로 입에 붙는 말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요정과 함께한 하루> 에잇, 진부하다. <정령과의 눈 맞춤> 이것도 아닌데. <정령 그대는 요정?> 오... 뭔가 로맨틱한데. 꼭 로맨스 소설 제목 같다. 이걸로 할까. 정령과 요정, 둘 중 뭐로 해야 할까. 검색 한 번 해보자.
정령 - spirit, soul
1.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
2. 죽은 사람의 영혼.
3. 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여러 가지 사물에 깃들어 있다는 혼령. 원시 종교의 숭배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정령은 만물에 깃든 신령한 기운을 뜻하며, 동아시아에서는 요정, 요괴, 귀신과 동의어로 쓰였고, 서양에서는 4원소 엘리멘털 개념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요정 - fairy, pixie, elf
1. 요사스러운 정령.
2. 서양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
[요정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에 인격이 깃들거나 형성된 초자연적인 존재를 지칭한다. 도깨비, 구미호, 엘프, 갓파 등도 모두 요정에 속한다.]
요정과 정령을 간략하게 정리한 정보다. 녀석들은 사전적으로는 정령에 더 가깝다. 그럼, 정령이라 부르고 각자에게 이름을 붙여서 그들의 존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써볼까. 단순 관찰기는 재미없을 것 같으니까,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가 어떨까.
그들은 누구인가? 왜 나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가? 그들에게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던 나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 나쁘지 않은데. 좋아. 제목은 천천히 짓기로 하고 우선 과제부터 하자.
- 일.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강력하게 부정하는 인물 만들기 -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부정하는, 그것도 강력하게 부정하는 인물이라...
- 아주 현실적이고 자기가 본 것만 믿는 사람.
-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
- 마술적 사고나 미신을 혐오하는 사람.
- 모호하거나 불확실한 걸 싫어하는 사람.
- 예측 불가능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언뜻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예시를 다섯 개나 들었지만, 표현만 다를 뿐 한 사람의 사고방식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더 다른 예는 없을까?
어른이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면 오타쿠라고 놀리는 것처럼, 요정이니 정령이니 하는 걸 믿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바라보겠지. 그렇다면...
-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
-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시선을 아주 많이 의식하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니면. 철저한 이과적 사고방식을 가진, 과학이 곧 진리인 사람? 어떤 이론이나 개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신뢰가 올라가고 무게감이 달라진다. 인지 심리학이 실험과 관찰이라는 연구 방법을 채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뇌과학도 마찬가지일 테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과학임을 입증하려고 평생 노력했다고 한다. 그가 들으면 야속하겠지만, 현대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을 예술의 영역으로 보는 것 같다. 나는 프로이트 전집 중 꿈의 해석과 종교의 기원만 완독 했기에,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안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말이 많다고, 지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럼에도 나는 문과 감성 인간인지라,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프로이트식 치료를 하는 곳이 거의 없겠지만,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그의 환자처럼 카우치에 기대어 자유연상법을 받아보고 싶다.
나에게 묻고 싶다. 과제에서 벗어나는 독백을 늘어놓는 이유가 뭐냐? 소설 작법에 그런 말이 있잖아.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라고. 캐릭터의 개성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아니며,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훗날을 대비한 복선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구구절절한 말들을 지껄이는 거냐? 아는 거 하나 나왔다고 유세라도 떠는 거야?
왜... 왜냐고? 인간의 사고는 이성적이지 않거든. 논리적 사고란 훈련의 영역이거든. 틀에 맞춘 작법 기술 안에서 소설을 쓰라고 하면, 나 같은 인간에겐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 인간 정신은 분열하라고 만들어진 거잖아. 안 그래?
그래, 맞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등장인물의 끝없는 독백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지. 난 그게 좋아. 캐릭터와 함께 미쳐가는 내가 느껴지거든.
고대 주술사의 입에서 발화된 언어와 리듬은 사람들을 트랜스 상태로 빠트려. 무당이 왜 귀신을 믿는 줄 알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서 황홀경에 빠지기 때문이야. 이승에는 없는 세상을 체험하는 거지. 그들 처지에서 보면 귀신은 존재하는 존재야.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때 그는 자기가 아닌, 캐릭터가 되는 거야.
내 말이 틀려? 내가 나를 죽여서, 다른 내가 되어야 혁신이 일어나지. 안 그래? 태초의 짐승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존재를 희생시켰어. 지금 우리는 그럴 필요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스산한 짐승의 피가 어디 갈까? 남을 못 죽이면 나를 죽여서라도, 차갑게 굳은 핏덩이를 달궈야지. 그래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 안 그래?
상상하지 못하는 인간. 아니, 상상하는 자신을 부정하는 인간. 그래, 바로 너! 환상에 빠지는 걸 유아적이고 미성숙하다고 여기는 너 말이야. 감정을 동결시켜야 이 험난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 찰나의 직관을 믿지 않고, 관찰을 통한 판단을 믿는다는 너. 그게 바로 지연된 직관이야.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아.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그래. 너라면 내 이야기에 반대할 자격이 있어. 너 같은 인간이야말로, 나를 죽일 수 있는 온정 가득한 사람이야. 네가 가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라면, 나처럼 비이성적이고 환상에 빠진 인간을 살려두진 않겠지. 그래 안 그래?
자 이제 너의 논리정연한 이론을 펼쳐봐. 날름거리는 혀가 보고 싶어. 얼른 날 흥분시켜 봐! 너라면 할 수 있어. 힘을 내. 어서 날 짓밟아 줘. 나는 환상에 빠진 사람이야. 물리적 죽음을 목격하려면, 감정부터 죽여놔야 한다고. 그래야 진짜 운명이 완성되지.
너 나 포기할 거야? 안 돼. 포기하면 안 돼. 네가 날 포기해야, 나도 날 포기할 수 있어. 난 너 포기 안 할 거야. 네가 날 짓이기게끔 할 거야. 그러니 어서 날 짓밟아 줘. 어서! 반성하지 마. 넌 잘못한 거 없어. 네 행동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어.
지금 네가 느끼는 성찰 나부랭이는 날 위한 게 아니야. 내게 미안해하고,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내게 사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너의 성찰은 너를 위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뭣 같은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거라고! 안 그래?
그러니까 어설픈 반성 따윈 집어치우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해. 짐승이 부르잖아. 피가 끓잖아. 안 그래?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짐승의 후예야. 그러니 어서 날 죽여. 너의 그 잘난 대가리로 자신을 정의 내리지 마. 어차피 평가는 남들이 하는 거야.
내가 아무리 날 쓰레기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도 있어. 네가 아무리 널 대단하다고 과신해도, 남들은 널 하찮게 여길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반성이니 사과니 하는 타인이 심어준 관념들은 제쳐버리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날 분해하고, 해체하고, 잡아먹으라니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그거잖아. 안 그래?
뭐야... 진심이야? 진짜로 나한테 미안한 거야?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화해하면 안 되는데. 너와 난 끝도 없이 반목해야 하는데. 그게 우리 역할인데. 선생님이 내준 과제인데. 우리를 중재하는 건 제삼자여야 하는데.
잠깐... 선생님이 내준 과제라고? 그렇담... 지금 나도 이용당하고 있는 건가? 하라는 대로 하는 반푼이인 거야? 그깟 과제가 뭐라고. 과제를 열심히 해야 착한 아이이고, 지난번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고? 왜 그래? 아니란 거 알잖아.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간다 한들, 그 사람이 나만 예뻐하고 아껴줄까? 아니지. 심대한 착각이야.
나는 왜 선생님 말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한 거지? 뭔가 기대한 건가? 설마... 정말? 그녀의 말에 경청하고, 과제도 열심히 준비하고,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면. 날 안아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안으면 뽀뽀도 하고, 몸도 섞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거야? 흐흐흐. 맞지? 그거지?
이야... 대단하다. 결국 내 행동이 거짓이었던 거네. 내가 하는 짓거리가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던 거네. 너의 그 잘난 대가리 속에서 말이야.
말해봐. 어디까지 갔어? 그 선생이랑 어디까지 갔냐고? 너 속은 거 아니지? 속는 척한 거지? 너 스스로 그 선생이 시키는 걸 따르기로 한 거잖아.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로 둔갑시킨 거잖아. 너 대체 뭘 믿고 있는 거야?
말해봐. 네가 바라 마지않는 그늘진 욕망의 정체가 뭐야? 사랑? 위로? 안정? 정말로 그딴 걸 믿은 거야? 그걸 원한 거냐고? 아니지? 솔직히 말해봐. 너 그녀의 알몸이 보고 싶은 거잖아. 만지고 싶지? 냄새 맡고 싶지? 성숙한 여성에 대한 환상... 맞지? 엄마한테 못 받은 사랑, 외간 여자한테 받고 싶은 거지? 그녀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싶은 거지? 그렇지?
아니야? 왜 부정해? 쪽팔려? 내가 알아맞히니까 쪽팔린 거지? 그렇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왜? 이번엔 누가 볼까 무서워? 어린놈이 나이 든 여자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겁나?
내가 전에도 말했지. 너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영원히 얻지 못할 거라고. 네 손에 쥐어지는 건, 네가 원하는 척한 것, 뿐일 거라고. 그게 너야. 남은 삶에서 의미 있는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놈. 넝마주이처럼 무가치한 것들만 주워 담고 다닐 놈.
의미? 의미라고 했나? 의미를 왜 네가 정하지? 너한텐 쓰레기 같은 물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소중한 거야. 의미는 내가 부여해. 대단한 걸 깨달은 척하지 마. 넌 자신을 학대하는 루저일 뿐이야. 더 이상 내 과제에 끼어들지 마. 나는 네가 아니야. 나는 너와 다르게,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제발 좀 꺼져!
메신저 효과음이 울렸다. 긴 몽상에서 깨어난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재건이었다.
[뭐함? 과제함?]
나는 답장했다.
[과제 1번 하고 있었음. 넌?]
[오빠 생각♡]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자료에 적힌 두 번째 과제로 눈을 돌렸다. 내 이야기를 긍정하는 인물과 부정하는 인물, 중립에 선 인물을 등장시켜 대화 나누기.
메신저 효과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재건이 보낸 메시지일 것이다. 나는 두 번째 과제를 하기 위해,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사람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던지, 진짜 듣고 싶은 말을 들어야, 미련 없이 대화를 끝낼 수 있으니까.
그들, 작가들의 말이 옳았다.
- 글쓰기는 작가의 의도를 배반하며, 그가 알지 못한 세계를 말하게 한다. 작가는 자신이 아닌 것을 만들어낸다. -
이 말이 맞다면, 1번 과제는 실패한 게 아니다. 내 삶도 실패한 게 아니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이야기야말로, 글의 본질이자 창조의 시작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를 넘어서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