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못 잃어~”라는 유행어가 쉽게 이해되고 해학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못 잃는 것’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못 잃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행복’을 못 잃는 부류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든 거저 주어진 것이든 상관없이 자신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경우로, 대다수의 인간은 이 부류에 든다. 음식, 돈, 섹스, 지위 등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까지 행복감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못 잃는 것'이 될 수 있다. 이 부류의 공통점은 행복을 더 쉽게 많이 얻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밀한 비밀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 비밀이 작냐 크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비밀이 있냐 없냐에 관한 것이니까.
두 번째 부류는 ‘양심’을 잃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역시 행복을 좋아하고 즐길 줄도 알지만, 쾌락이나 이득을 위해 양심을 타협하는 일을 극도로 미워한다. 그들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이득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날때부터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으며, 남들과 다를바 없는 인생을 살던 어느 날 더이상 양심을 더럽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이끌려 모든 과거를 회개하고 새로 태어나는 방식으로 ‘각성’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양심’을 ‘진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두 부류 중 후자가 인생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양심을 팔아서 무언가를 더 가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렇게 원하던 행복감은 길게 느끼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게 된다. 결국 미디어나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모습과는 달리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 않은 후자가 양심도 행복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건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못 잃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뿐이다. 코맥 매카시가 대본을 쓰고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카운슬러>에서 브래드 피트 분의 마약 중개상 웨스트레이의 유명한 대사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You don’t know someone until you know what they want”
'진짜로 원하는 것'은 곧 '못 잃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 대사는 이렇게 바꿔도 상통한다.
“You don’t know someone until you know what they can’t lose”
만약 간절히 원하는 것(못 잃는 것)이 ‘행복’인 어떤 사람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사람이 당신 자신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