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떠난 뒤 많은 계절이 흘렀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그렇게 많은 계절이 너의 뒤로 흘러 지나갔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어둠과 적막만이 집에 돌아온 나를 반겨준다는 사실보다, 그런 것 따위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내 모습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언제나 돌아보면 나를 반겨주던 너, 나만을 바라보던 너.
맥주를 사러 잠깐 편의점에 다녀온 것뿐인데 너는 마치 공항에서 유학 다녀온 연인을 반기는 사람처럼이나 항상 나를 반겨줬었지. 외출이 조금 길어졌다 싶으면 너는 마치 나라가 독립이라도 한 것처럼 두 손을 들고 나를 반겨서 내 마음 어딘가를 찡하게 하곤 했었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서로를 항상 반겨준다면 얼마나 이 세상에 기쁨이 넘쳐흐를까. 단순히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에는 깊은 감동이 인다는 것을 너로 인해 알게 되었다.
언제나 돌아보면 나를 반겨주던 너, 나만을 바라보던 너.
너는 불평하지 않았다. 넓은 집인지 좁은 집인지 따지지 않았고, 좋은 차를 태우나 똥차를 태우나 내가 옆에 함께 있는한 너는 항상 기뻐했었다. 십만원짜리 미용을 해줘도, 장발에 떡진 모습으로 방치해도 넌 나만 바라보며 기뻐했었다. 마치 나만 곁에 있으면 된다는 듯이. 그러기만 하면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내가 너를 옆에 두고도 마음이 허해서 치킨을 시킬까 족발을 시킬까 고민하던 밤에도, 너는 나만을 올려다보며 눈으로 말해주었다. 뭐 하냐고, 무슨 일 있냐고, 나랑 놀지 않겠냐고. 족발이 앞에 있으면 맛있게 먹는 너지만 그런 것따위 없어도 나와 놀 수 있는한 너는 행복해했다. 가족을, 친구를, 애인을 옆에 두고도 행복보다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더 느끼던 나를, 너는 그런 무조건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부끄럽게 했었다.
닭뼈, 초콜릿, 포도.
입에는 달콤해도 먹으면 죽는 위험한 것들에 세상 기쁜 표정으로 해맑게 달려들던 너. 너에게 그것들은 순간적으로는 즐겁지만 장기적으로 치명적이라는 걸 가르치지 못한 나머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신경써서 치우는 것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나는 너로 인해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었다. 혹시나 나도 입에만 달콤하고 결국엔 해로운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내가 노력한다면 그런 해로운 것들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될지, 아니면 너처럼 다른 누군가가 억지로 나를 그것들로부터 떼어놓지 않는한 언젠가 그것들로 인해 죽을 운명인 것인지. 혹시 나도 너처럼 인형에다, 수건에다, 모르는 사람 다리에다, 아무데나 붕가붕가를 하고 싶어하는 존재는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었다.
이제 난 너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너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존재함 그 자체로 선물같았던 널. 그리고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도 난 잊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반겨야 한다는 것.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욕심의 충족과는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순간적인 달콤함을 주는 것들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너는 신이 나에게 그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준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랑이란 무엇인지, 동행이란 무엇인지,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너는 천사처럼 나에게 보내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마음이 짙어진다.
언젠가 신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너를 돌려달라고 부탁을 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