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임마! 내가 누군지 아나? “

— 어. 민. 민. (어차피 민원인은 민원인)

by 굥스

두근두근.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이
나의 글감이 되어 줄까.’

억지 긍정 회로(?)를 돌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역시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도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는 그 목소리.



“나 10년 전에 퇴직한 ㅇㅇ처장 ㅇㅇㅇ인데”


…그래서요..?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직원이다.

짬(?)도 조금 찼고.


그래서 꾹 참고
그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결론은 간단했다.

유실물을 찾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본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실물.


그런데 굳이
‘10년 전 직급’까지 또박또박 밝힌 이유는 뭘까.

한때 높은 사람이었으니 전 역사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달라는 의미였을까.


게다가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유실물 처리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네.”

10년 전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라떼 토크.


문제는 내가 그 라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사장님이든
나라님이든

어차피 민원인은 그냥 민원인이다.


다른 민원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실물이 종착역인 우리 역까지 도착하면
바로 연락드리겠다고 안내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두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10년 전 그분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마치 10년 전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말하듯
자연스럽게 반말을 섞었다.


거기에 더해
내일 유실물센터로 직접 전화해서
찾아봐 달라고 한다.


센터에는
본인이 직접 연락하셔야 한다고 안내했더니

“그럼 전화 끊고 나면
유실물센터 번호 문자로 보내주세요.”


은근한 무례함은
끝까지 이어졌다.


전화를 내려놓고 나니
괜히 머릿속에 이런 대사가 맴돌았다.


“니 임마, 내가 누군지 아나.”


퇴직한 지 10년.

회사 규정과 절차는
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직급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한 모양이다.


까마득한 후배한테

‘내가 누군데’라며 말을 꺼내는 생각만으로도

민망하기만 한데..


난 다행히도 아직 한참 멀었다.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꽤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동지

내일의 진상 고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