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가방남”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

by 굥스

퇴근 직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가방을 지하철에 두고 내렸는데요.
제가 지금 ㅇㅇ으로 가고 있거든요.
너무 급해서 그런데 그 가방 기차에 좀 실어서 보내주세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혹시... 지금 말씀하신 기차가 KTX인가요?”
“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같은 철도잖아요.”

…그는 진심이었다.



“고객님, 저희는 ㅇㅇ지하철 소속이고
KTX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입니다.
회사도 다르고 시스템도 달라서
그렇게 물건을 전달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저번에 KTX에서 가방 잃어버렸을 땐 그렇게 해줬어요.
거기도 똑같이 하면 되잖아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답했다.
“그건 아마 코레일 내부에서 고객님을 위해 특별히 도와주신 것 같아요.
저희는 그와 같은 절차나 권한이 없어서
유실물센터를 통한 처리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끊었다.
“아니, 거긴 해줬는데 왜 여긴 안 돼요?
그냥 ㅇㅇ역으로 가서 열차에 전달만 하면 되잖아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본인 하나 때문에,
종착역 직원 -기관사 -지하철 ㅇㅇ역 직원 -기차 ㅇㅇ역 직원이 최종 목적지 역으로 전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해야 하는지 알고나 하는 얘기일까.



결국 나는 조용히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원칙상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통화를 마쳤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짜증 섞인 한숨이 오래 남았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한다.
그 말 안에는 ‘조금만 도와달라’는 호소도 있지만,
때론 상식의 경계를 넘는 요구가 함께 섞여 있다.



우리는 고객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이 존재한다.



호의는 배려이지만,
당연해지는 순간부터는 요구가 된다.

이쯤되면, 그대들이 정상인지
내가 비정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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