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깨진 것은 병뿐이었다”

—그래서 살아갑니다.

by 굥스



쨍그랑—
오늘은 또 어떤 유실물이 들어왔으려나,
하며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늘 아침 찾으러 오기로 한
중국 술 한 병이
바닥에 깨져버린 것이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유실물 진상 고객들로 이미 진이 빠진 상태라
더욱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내 실수임은 명백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하철 역 직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찾아가시기로 한
유실물 중 하나가 깨져서
변상해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찰나의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뜻밖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놀라셨겠네요. 괜찮아요.
우리 아저씨가 술 취해서 놓고 내린 건데,
찾으러 갈지 말지도 고민했어요.”



아…

한 소리 들을 각오로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그 한마디에 스르르 풀려버렸다.


너무 별일 아니라는 듯,

“괜찮아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


라고 말하는 그 다정한 목소리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



중요하고 비싸고를 떠나,
남의 실수에도 관대할 수 있는
참 어른을 만났다.

몇 년간의 근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병은 깨졌지만,
내 마음을 녹였다.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마음은 자주 지치지만,
그래도 가끔은
뜻밖의 따수움이 나를 버티게 한다.

이쯤되면, 그대들이 비정상이어도
그래도 오늘의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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