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유월의 공기는 단순히 계절의 바뀜을 알리는 습기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도가니 속에서 끓어오르는 인광(phosphorescence)처럼, 형용할 수 없는 불안과 형형한 살기를 동시에 머금고 있었다.
4월의 대통령 선거와 5월의 국회의원 선거라는 유혈 낭자한 정치적 제의(祭儀)를 치러낸 뒤였으나, 승리한 자들의 잔치는 짧았고 패배한 자들의 신음은 길었다. 1971년 6월의 한반도는,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질주하던 국가라는 이름의 기관차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의 궤도를 수정하며 내뿜는 거친 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권력의 성채와 유신의 복선
박정희라는 이름의 거대한 일인 성채(城砦)는 외견상 공고해 보였다. 삼선개헌이라는 무리수를 통해 얻어낸 승리는 그에게 절대권력의 외피를 입혀주었으나, 그 내면에는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서늘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김대중이라는 신예 야당 정치인이 몰고 온 바람은 단순한 선거의 득표수를 넘어, 십여 년간 이어온 '조국 근대화'의 서사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6월의 청와대 집무실은 바깥세상의 녹음(綠陰)과는 절연된 채, 침묵의 심연 속에 잠겨 있었다. 그곳에서 벼려지던 것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만적인 수사(修辞) 뒤에 숨겨진 서슬 퍼런 비수, 즉 유신(維新)의 설계도였다. 훗날 역사가 기록할 그 암울한 체제의 예고편은 6월의 정국 곳곳에서 불길한 징조로 나타났다. 권력은 이제 더 이상 대중의 동의를 구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은 모든 비판을 잠재우는 전능한 방패가 되었고, 정보기관의 촉수는 사회의 가장 미세한 혈관까지 파고들며 공포의 일상화를 획책하고 있었다.
광장의 노도와 청년의 초상
대학 가는 그야말로 화산의 분화구와 같았다. 6월의 태양 아래 스크럼을 짠 청년들의 이마에는 식지 않는 분노가 맺혀 있었고, 교정마다 나붙은 대자보는 시대를 향한 서늘한 격문이자 스스로를 역사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처절한 제문(祭文)이었다. 교련 반대와 부정선거 규탄이라는 구호는 이제 단순한 항의를 넘어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지성이 침묵하는 곳에 독재의 잡초가 자란다."
어느 강의실 벽에 적힌 이 문장은 당시 청년들이 짊어졌던 실존적 고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6월은 낭만의 계절이 아니라,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과 맞닥뜨려야 하는 시련의 장이었다. 위수령의 공포와 강제 입영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이 멈추지 않았던 것은, 자신들이 내뱉는 함성이야말로 이 질식할 것 같은 시대의 유일한 산소통임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채와 광장의 대립 너머, 서울 변두리의 황량한 구릉지에서는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이 쓰이고 있었다. 이른바 '광주대단지(현 성남)'로 강제 이주당한 빈민들의 삶은 6월의 뙤약볕 아래서 가차 없이 문드러지고 있었다. 화려한 경제성장의 낙수효과를 선전하던 국가의 목소리는 그곳까지 닿지 않았다. 상하수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진흙탕 속에서, 사람들은 '국가 발전'이라는 거창한 명분에 의해 소모품처럼 버려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들의 침묵은 학생들의 구호보다 무거웠고, 그들의 눈빛은 정치인의 사자후보다 날카로웠다. 훗날 8월에 터져 나올 대규모 폭동의 에너지는 이미 6월의 그늘진 골목마다 독처럼, 혹은 혁명의 불씨처럼 고이고 있었다. 그것은 근대화의 수레바퀴에 깔린 민초들이 내지르는 마지막 단명이자, 비정한 국가 권력을 향해 던지는 날 것 그대로의 저항이었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발자국
1971년 6월은 그렇게 우리 역사의 단층을 가로지르며 흘러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영구집권을 위한 치밀한 포석의 달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무너져가는 민주주의의 가닥을 붙잡으려 몸부림치던 절망의 계절이었다. 또한,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근대화의 신화 뒤편에서 신음하던 이들에게는 국가라는 존재의 허구성을 목도한 자각의 시간이기도 했다.
유월의 장마가 시작될 무렵, 한국 사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유신의 긴 터널을 향해, 시대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삐걱거리는 비명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월의 뜨거웠던 열기는 결국 억압의 시대를 여는 불꽃이 되었고, 동시에 그 암흑을 버텨낼 저항의 씨앗을 우리 가슴속에 깊이 심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