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과 초콜릿

by 고영주



그해 칠월은 잔인하리만큼 무더웠다. 습기 어린 열풍과 함께 찾아온 여름은 방학을 맞이한 해방감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집안을 가득 채웠던 것은 계절의 열기만이 아니었다. 무례한 발소리를 앞세워 들이닥친 빚쟁이들은 마치 패전국의 성채를 유린하는 점령군처럼 당당했고, 그들이 휘젓고 다닌 거처에는 비굴한 침묵과 서늘한 공포만이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구로동으로 이사를 가야 해"


한동안 집을 비웠던 아버지가 그림자처럼 마당에 나타나 이같은 말을 했을 때, 나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 지옥 같은 빚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아버지의 말에 따라 서울 구로동으로 가자고 동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는 삼용차라 불리던 삼륜용달차 한 대가 우리네 비루한 세간살이들을 싣기 시작했다. 큰 세간들은 다 버려져고 남겨진 것들은 주인 잃은 고아처럼 마당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떠나는 자들의 뒷모습을 원망스레 지켜보았다. 삼용차 적재함 위로 때 절은 밥상과 낡은 곤로,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항아리와 화분이 층층이 쌓였다. 겨우 간단한 짐들만 추렸음에도 차체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육중한 비명을 질렀다.

​내 작은 손 안에는 햇살을 머금어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사금파리 조각과, 별이 그려진 동그란 모양의 종이딱지 묶음, 그리고 플라스틱 장난감 권총이 땀에 젖은 채 꼭 쥐여 있었다. 그것들은 인후동의 골목을 호령하던 나의 자부심이자, 무너져가는 유년의 성벽을 지탱해 줄 마지막 병기들이었다.

​가족은 둘로 갈라졌다. 어머니와 세실리아, 헬레나 두 누나는 통일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고 나는 삼용차의 좁은 앞 좌석에 아버지와 운전사 사이에 끼여 앉았다. 가장 마음을 짓누른 것은 홀로 남겨진 형의 뒷모습이었다. 중학생인 형은 학업을 위해 친척집에 남겨졌다. 차가 구르기 시작할 때, 나는 형과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이토록 쉽게 찢겨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서울로 가기 싫어하는 내게 아버지는 서울에 가면 이런 것 또 사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나하나 초콜릿' 한 갑을 건네주었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듯, 한 손으로는 권총과 딱지를 부여잡은 채 떨리는 손으로 은박지를 까 그 검은 조각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입안에서 조용한 반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딱딱했던 외양과 달리 부드럽게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스치며 경계심을 자극하더니, 이내 뒤따라오는 것은 폭포수처럼 밀려드는 진하고 걸쭉한 단맛이었다. 그 단맛은 설탕물의 가벼움과는 궤를 달리하는, 혀를 빈틈없이 애무하며 목구멍 깊숙이 스며드는 관능적인 감미였다.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그 허망한 사라짐이 못내 아쉬워 혀로 입천장을 훑어내었으나, 이미 초콜릿은 은은한 잔향만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은 단순한 간식의 섭취가 아니었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과 딱딱한 나무 책상 너머, 저 멀리 바다 건너 어디쯤에 있을 화려한 세계를 향한 소년의 첫 동경이자, 혀끝으로 깨친 문명의 세례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전주의 마지막 풍경은 매연에 섞여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삼용차가 가르릉 거리며 도로를 내달릴 때마다, 내가 사랑했던 인후동의 골목들과 이름 모를 집 마당에 서 있을 이냐시오 형의 모습이 아득한 심연 저편으로 밀려났다. 태양 아래 하얗게 빛나던 등교길도,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교정의 나무들도, 이제는 손에 닿지 않는 피안의 세계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세실리아의 6.25 웅변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