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의 대기는 늘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서글픈 가난의 냄새로 절여져 있었다. 전주라는 생활의 터전을 뒤로하고 삼륜용달차에 실려 올라온 서울 변두리의 삶이란, 대저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소년에게는 유배지와 다름없는 적막함이었다.
친구도, 책도, 심지어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와 형마저 부재한 그 도심의 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무채색의 골목을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그곳은 질서보다 생존의 비정함이 먼저 고개를 드는 야만의 땅이었다. 골목마다 가득한 것은 헐떡이는 기계음과 누군가의 비천한 생을 증명하는 고성(高聲)뿐이었고, 갓 상경한 소년의 귀에 꽂히는 이방의 언어들은 마치 날 선 파편처럼 가슴을 찔렀다.
보호받아야 할 막내의 지위는 그 혼돈의 한복판에서 아무런 방벽이 되어주지 못했다. 가난했지만 옹기종기 모여 살던 화목한 가정 대신 내 앞에는 무지(無知)와 체념이 뒤엉킨 거친 노상의 풍경만이 놓여 있었다.
나를 지켜주던 혈육들의 빈자리는 거대한 공동(空洞)이 되어 밀려왔고, 나는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단단히 폐쇄했다.
매연에 가려진 태양 아래서 나는 아이다운 천진함을 버리고, 세상을 응시하는 조숙한 관찰자의 눈을 가졌으나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일종의 가혹한 진화였다. 구로동의 그 황량한 바람은 여덟 살 소년의 여린 피부를 뚫고 들어와, 고독의 문신을 새겨 넣고 있었다.
어느 날, 공터에서 마주친 ‘영구’라는 녀석은 내 무료한 망명 생활에 첫 번째 사건을 만들어준 인물이었다. 녀석은 내게 종이비행기 결투를 제안했다. 승자에게는 패자의 이마에 단단한 ‘꿀밤’을 선사할 권리가 주어지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명예와 통증의 교환이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보물 잡지 『주부생활』을 펼쳤다. 여성의 지혜와 유행이 집약된 그 두툼한 종이 질감은 비상을 위해 태어난 도구였다. 나는 비행기의 앞머리를 두 번, 세 번 겹쳐 접으며 무게중심을 집요하게 앞부분에 고착시켰다. 그것은 비행기라기보다는 차라리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미사일에 가까웠다.
영구의 비행기가 공중에서 힘없이 선회하다 제 발등 위에 툭 떨어졌을 때, 나의 ‘주부생활호’는 마치 인류의 도약을 선포했던 아폴로 11호처럼 구로동의 탁한 공기를 가르며 비정하게 멀리 날아갔다.
“딱!”
중지를 꺾어 예리하게 때린 나의 타격은 영구의 이마에 정확히 작렬했다. 분노한 영구가 집으로 달려가 전열을 가다듬고 돌아왔으나, 이미 기체역학의 진리를 깨달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내 비행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영구의 이마는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결국 이성을 잃은 영구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을 때, 우리는 먼지 구덩이 속을 뒹구는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 옷은 걸레짝이 되었고 어머니의 매타작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으나, 내 가슴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이 솟구쳤다. 그것은 전주 동국민학교 1학년 8반 분단장으로서, 낯선 서울 땅의 텃세를 실력과 근성으로 잠재웠다는 승리자의 긍지였다.
그러나 승리의 도취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골목의 질서 속에는 소년의 완력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포식자가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대문을 나서면 모퉁이 이발소가 있고, 그 곁에 쌀집이 자리했다. 이발소 아저씨가 수건 양끝을 잡고 ‘탁탁’ 소리를 내며 손님의 머리를 말려주는 광경은 어린 내 눈에 비친 도시의 멋이었으나, 그 옆 쌀집은 공포의 근원지였다. 그곳엔 송아지만 한 셰퍼드 한 마리가 늘 쌀가마니 옆에 버티고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검문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 나는 어머니의 비호 없이 홀로 그 쌀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야수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심장은 이미 패배를 선언하며 요동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집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여덟 살 소년의 짧은 보폭이 어찌 맹견의 질주를 따돌릴 수 있었겠는가.
이발소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발이 엉켰고, 그 찰나의 순간 셰퍼드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왼쪽 엉덩이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비명은 비리고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고, 쌀집 아저씨가 달려오고 나서야 나는 야수의 아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거센 항의와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내 엉덩이에 새겨진 그 깊은 상흔은 이후 평생토록 짐승을 경원시하게 만드는 문신이 되었다. 구로동의 나날은 그렇게 꿀밤의 짜릿한 승전보와 셰퍼드의 무자비한 이빨 자국이 교차하며, 소년의 내면에 서울이라는 거친 파고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 각인은 한낮의 통증으로 그치지 않고, 칠흑 같은 밤이면 어김없이 지독한 악몽의 형상으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정체 모를 거대한 아가리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으나, 내 빈약한 두 다리는 마치 늪에 빠진 듯 진창 속으로 잦아들 뿐이었다.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를 휘저어도 몸은 공장 굴뚝의 연기처럼 허공에 겉돌았고, 뒤를 쫓는 비정한 짐승의 숨결은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그 무력한 질주는, 어쩌면 낯선 타경(他境)에서, 아버지의 부재로 홀로 풍랑을 맞아야 했던 나의 실존적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 땀에 젖은 이불을 움켜쥐면, 어둠 속에서 만져지는 엉덩이의 흉터는 여전히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