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난 후 기다림은 손가락 마디에 매달린 숫자였다
기다림은 어린 손가락 마디마디에 매달린 서글픈 숫자였다. 엄마가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서른 밤. 그 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는 강물이 흐르는 번덕으로 나갔다. 그곳엔 엄마 없는 강물과 엄마 없는 하늘, 그리고 오지 않을 약속을 품고 잠든 내 유년이 있었다.
엄마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첫날, 나는 들머리를 지나 앞 내 번덕으로 나갔다. 눈앞에 끝없이 푸른 잔디가 펼쳐졌다. 번덕 끝과 맞물려 흐르는 강물과 산, 구름과 하늘은 시리게 아름다웠지만 그저 '엄마가 부재하는 풍경'일 뿐이었다. 엄마 없는 강물과 엄마 없는 하늘, 엄마 없는 번덕에서 나는 혼자였다. 아득한 스물아홉 밤을 손가락 마디로 세다가 다 못 세고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리움이 머무는 자리에 고단한 잠이 내려앉았다.
홍역이 불덩이로 달아올랐고 확성기 소리가 윙윙거리며 구로동의 풍경이 지나갔다. 기자촌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 네로를 부르며 닐 암스트롱은 '슬로비디오'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딛고 영구의 종이비행기는 아폴로 11호가 되어 하늘을 날았다. 쌀집 셰퍼드는 하얀 이빨로 쫓아오고 대방동 무장공비들은 나를 향해 총을 쏴댔다. 달아나는 내 두 발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엄마는 모랫길을 ...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애미야. 여기서 같이 살자꾸나. 아이들에게는 제 어미가 하늘이고 땅이다. 어미 없는 하늘 아래 저 어린것들이 어찌 살아가겠느냐. 농사일 같은 고된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애들 곁에 살다 보면, 제 아비도 언젠가는 집을 찾아 돌아오지 않겠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부모자식이 생이별을 한단 말이냐. 아이들 가슴에 대못 박는 일만큼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못 본다."
"아버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릇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비극의 무게가 정해져 있는 법인데, 저에게 이보다 더한 인내를 강요하시는 것은 차라리 죽음과 맞바꾸라는 말씀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제가 오죽하면 이 어린 것들을 떼어놓으려 하겠습니까.
이 모든 사단은 아버님이 그토록 금지옥엽으로 키우신 아드님의 업보이니, 마땅히 그 뿌리이신 아버님께서 거두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인이 된 할아버지의 무기력한 설득과 그에 맞서는 어머니의 단호한 항변을, 우리들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숨 죽인 채 듣고 있었다. 혹여나 할아버지의 간곡한 당부에 엄마 마음 한 자락이라도 되돌려질까 가느다란 기대를 품었으나, 어머니의 태도는 완강했다. 아버지의 방종에 대한 억눌린 분노를 서슬 퍼렇게 내뱉고 어머니는 우리를 뒤로한 채, 대문을 밀치고 나섰다.
"서른 밤 지나고 다시 오마."
서른 밤.. 엄마가 내뱉은 그 구체적인 숫자는 남겨진 이들에게는 희망 고문이었고, 떠나는 이에게는 유일한 퇴로였을 것이다. 엄마가 골목길을 돌아 영대네 행랑채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우리 세 남매는 약속이라도 한 듯 뒤꼍으로 조르륵 내달렸다. 낮은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들고, 엄마의 뒷모습이 뒷동산 모퉁이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설핏 잠결을 헤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부서지는 햇살 아래 속절없이 일렁이는 강물의 은빛 향연이 펼쳐졌다. 강물이 제 몸을 뒤척여 만들어내는 수만 개의 물비늘이 수면 위로 반짝이며 넘실거렸다. 미류나무의 넙적한 잎사귀 사이로 하얀 바람이 사각사각 부서졌다. 내가 누웠던 나지막한 번덕 위로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리고 그 푸르름 끝에 매달린 까만 잔디씨들이 음표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Nod: The Exile of Displaced Souls
After slaying his brother Abel, Cain was finally pushed out from the Creator’s embrace and ventured into the wilderness known as 'Nod.' It was a harsh blessing—a forced migration to a realm where the gaze of the Divine no longer reached.
"So Cain went out from the Lord’s presence and lived in the land of Nod, east of Eden." (Genesis 4:16)
The ground trodden by Adam’s son was less a geographical direction than a psychological periphery, a place inhabited by those who had drifted from the center of order and grace. Far removed from Eden, Cain built a city for himself. He became a son of the wind, unable to settle, forced to endure a freedom devoid of rest. There, only the echoes of a neutered nostalgia for a lost paradise and an unquenchable deficiency remained.
In this way, the East of Eden became the distorted cradle of human civilization. Amidst the silence where the Divine voice no longer resonated, humanity strove to prove its existence by forging iron and fashioning musical instruments. Yet, behind every brilliant craft and achievement, a cold shadow loomed—the scent of blood shed by the hands that killed a brother, and a fundamental sense of alienation from being forsaken by the Creator.
"Behold, thou hast driven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 of the earth; and from thy face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vagabond in the earth."
The East of Eden is a record of humanity's lonely struggle, a history of those who turned their backs on the Divine garden to carve out their own destinies. It is the chronicle of the exile that we all, by fate, must c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