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나는 그리 자주 체했을까

소화되지 못한 슬픔은 늘 명치끝에 옹이로 남는다

by 고영주



남신당 한약방의 열린 문틈으로 습기를 털어낸 가을볕이 깊숙이 들어앉으면, 처마 밑 채반에 널린 약재들이 마른바람을 맞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약재들의 쌉싸름한 약취(藥臭)는 마을 골목의 낮은 담장을 넘어 들판의 곡식 익는 냄새와 기묘하게 섞여 들었다. 조부의 손때 묻은 약장 서랍 빼곡한 그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는 마을의 맥박을 짚어내듯 약작두 소리가 들렸다.


구월 초입의 망덕(望德)은 여름의 잔향을 털어내고 비로소 서늘한 갈바람에 몸을 맡기는 시기였다. 감꽃진 자리에는 제법 굵어진 장동감들이 가지마다 매달고 있었고 고개 숙인 해바라기가 마당 한구석에서 금빛 잔해처럼 서 있었다. 담벼락 아래로는 분꽃이 여름의 마지막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을을 감싸 안은 도랑물은 여름날의 탁기를 씻어내고 투명해졌으나, 오히려 깊고 은밀하게 흘러갔다. 성급하게 떨궈진 오동나무 잎사귀 몇 장이 종이배처럼 떠내려갔다.


엊저녁부터 명치끝이 꽉 막혀오더니, 이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몸 안의 기운이 순행을 멈추고 거칠게 역류하는 체증(滯症)이다. 조부께서는 말없이 갈무리해 둔 약을 꺼내어 약절구에 담으셨다. 절구가 돌함벽을 치는 소리가 적막한 약방 안에 울렸다.


​유독 약 가루의 비릿한 맛을 꺼리던 나였으나, 조부의 위엄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역겨운 향취가 코끝을 찔렀지만, 나는 조부가 건네는 약봉지를 받아 들고 목구멍 깊숙이 털어 넣었다. 쓴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안간힘을 다해 약물을 삼켰다.


​이윽고 할아버지께서는 투박한 손으로 나의 합곡혈(合谷穴)을 주무르셨고, 불에 달구어진 바늘 끝으로 열 손가락에 피를 내게 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도리어 형형해진 통증은 복막의 구석구석을 유린하며, 어린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체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위장의 고장이 아니라, 생의 근간을 지탱하던 두 축이 어긋나며 발생한 영혼의 거부 반응이었다.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의 부조리를 억지로 삼켜내야 했던 어린 영혼이 겪는 존재론적인 불화'였는지도 모른다. 부모와의 결별이라는 참혹한 중량을 감당하기에 나의 내면은 너무도 좁고 척박했으므로, 소화되지 못한 슬픔은 늘 명치끝에 단단한 옹이로 남겨졌던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나자 아이들은 길가에 줄지어 핀 코스모스를 따라 학교로 향했다. 책가방을 둘러메고 등굣길에 나선 동네 친구들의 재잘거림은 점차 멀어져 갔고, 나는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먼발치에서 하릴없이 바라만 보았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쥔 채 마루 끝에 엎드려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당가에 제멋대로 웃자란 돼지감자 줄기와 날 선 가시를 세운 탱자나무 너머로, 구월의 푸른빛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해 가을은 유독 서러운 빛깔을 띠었다. 들녘은 어느새 초록의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고, 강바람에 일렁이는 억새 물결은 마치 작별이 아쉬운 여름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집집마다 담장을 넘어온 감나무 끝에는 발그레한 가을볕이 머물고, 강둑 위로 낮게 번지는 햇살은 온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세상은 눈부시고, 나의 시간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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