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주 정도의 스윙 강습 하나가 끝나면 공연을 한다. 선생님들이 알려주는 안무를 익히고, 수업을 함께 들은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서 공연 당일 한껏 꾸미고 대망의 공연을 하는 것이다.
첫 공연을 준비했을 때다. 나도 대부분의 친구들도 처음이고 잘 모르기 때문에 긴장도 되고 무거운 마음도 들었다.
스윙댄스를 배우면서 여러 가지를 덩달아 배우게 되는데, 특히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스윙댄스는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어서 매너가 무척 중요하다. 대부분 남녀가 함께 추게 된다(요즘에는 리더 역할을 배우는 여성들도 많고, 팔뤄를 배우는 남성도 있다. 둘 다 배우는 댄서도 많다.). 리더가 춤을 리드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팔뤄는 그 리드를 받으며 춤을 추는데, 이때 신기한 것은, 음악이 흐르는 동안 리더와 팔뤄가 각자의 바운스를 유지하며 스텝을 밟고, 힘을 빼고서 자신의 프레임을 지키면 팔뤄는 리더가 어떤 동작을 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의사가 담긴 쪽지를 건네지 않아도.
내가 스윙댄스에 매료된 것은 그 '알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재미있고 신기할 뿐만 아니라 감동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수많은 대화와 글로 의사를 전달해도 실패했던 소통이 리듬을 타고 직관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마법 같았다. 춤이란 것이 결국 두 사람이 서로 배려하며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느끼기에 멋진 춤은, 파트너가 서로를 배려하며 자연스럽게 출 때 가능했다. 자연스러우려면 배려를 해야 한다. 나를 지키면서 서로를 배려한다면 자유로움을 느끼며 즐겁게 출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종종 바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배려가 손해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도 중요하고 함께 사는 사회라는 이야기는 어쩐지 고루한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스윙댄스를 추면서 배려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고 재미있는지를 몸으로 깨닫는다.
스윙댄스 대부분의 동작은 리더가 팔뤄를 배려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팔뤄는 직진. 춤을 출 때 리더는 팔뤄가 가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줘야 한다. 팔뤄는 춤을 추는 동안은 이 사람과 부딪히면 어쩌지, 내가 비켜줘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전달된 파트너의 힘만큼만 리듬을 타고 갈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파트너를 바로 보고 있거나 그의 손을 잡고 있다.
살면서 절대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춤을 배울 때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파트너를 만나곤 한다.
공연 안무 중에 팔뤄인 내가 공중에 붕 뜨는 동작이 있었다. 이 동작은 특히 리더와 팔뤄의 자세가 중요하다. 보기에 화려하지만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습을 하던 중, 한 리더가 계속 고집을 부렸다. 오래전 이미 이 춤을 배웠던 리더였는데, 장난인지 아닌지 계속 나의 동작을 지적하면서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아닌데, 네가 그러면 내가 불편한데? 네가 이렇게 오면 내가 비켜야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과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다칠 수도 있는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야, 네가 팔을 피면 내 팔이 불편한데? 하길래, 참고 참다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말했다.
“네가 불편한 게 맞아.”
나도 불편했다. 우리 서로 조금씩 불편한 게 맞다. 그렇게 음악에 맞추다 보면 조금 불편한 것이 조화가 되고 그 배려들이 쌓여서 믿음이 되고 나는 그 믿음을 딛고 붕 뛰어오를 수 있다.
춤을 출수록 배우는 것이 많아진다. 나 혼자 잘하고 멋지고 예뻐서 좋은 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손해를 보고 이득을 얻는 마이너스 플러스의 세계가 아니다. 이런 무계산의 세계가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