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은 처음 가보는 외국, 미지의 세계였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그때도 나는 다 큰 성인이었지만, 회피하는 것도 많은 어린아이기도 했다.
유럽에 가고 싶었다. 혼자서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성장하겠거니 생각했다. 성장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가 아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하듯 여행준비를 했다.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하고 훌륭한 것이 날 성장시켜 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미술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을 가려고 그랬다. 그런데, 현대 미술, 추상화는 별 감동도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램브란트의 빛과, 베르메르의 부드러움, 고흐의 타들어가는 듯한 강렬함은 좋았다. 적어도 그들의 작품은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을 일정에 넣었다.
암스테르담에서 160cm의 나는 땅꼬마였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키가 엄청 컸다. 나는 마치 거인국에 불시착한 소인국 국민 같았다.
게다가 내가 준비했던 숙소와, 일정 등에 문제가 생겼다. 급해서 들른 공중화장실에 돈을 내야하지 않나, 내가 알아본 박물관 패스 가격보다 실제 가격이 훨씬 더 비싸질 않나. 예약이 완료된 줄 알았던 유스호스텔에는 내 이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유 자리도 없어서 계획보다 숙소에 두 배가 넘는 돈을 쓰고 말았다. 없는 돈에 쪼개고 쪼개서 일정과 예산을 짰던 터라,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지출에 덜컥 겁부터 났다.
그리고 자주 길을 잃었다. 나는 지금 어디고,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어떻게 얼마나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뭘 하면 좋을지, 내가 가고 싶은 그 곳에 갈 수 있을지 겁났다. 키가 역시나 무척 크고 레게머리에 말쑥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이 선했다. 이때다 싶어 붙잡고 길을 물었다. 그는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동행해주었다. 그는 내게 암스테르담에는 처음인지, 여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친절이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게 처음이라고 질문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불쑥 내밀었다. 암스테르담은 너무나 좋지만 겁이 난다고. 그가 내 대답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조심하되, 겁낼 필요는 없다고.
그 말을 듣고서 용기가 조금 났다. 나는 그때까지 혼자서 해본 것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니 오롯이 혼자서 하루 종일 무얼 할지 결정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날들은 대부분 해야 하는 것을 하고, 가야할 곳에 가던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오로지 나에게 달렸다. 새하얀 캔버스 같은 하루가 통째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하얀 색이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그 위에 무엇을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 망치진 않을지. 아니, 이렇게 하얀 하루를 다 가져도 되는 건지.
그날 나는 맛있는 감자튀김을 케챱이 아닌 마요네즈에 찍어 먹고, 충동적으로 유람선을 탔으며, 현대미술관에 갔다. 현대미술은 내게 낯설었다. 마치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처럼. 6월의 차가운 암스테르담 바람처럼.
다리는 아프고 몸은 으슬으슬 쑤셔왔다. 이해되지 않는 작품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처음 보는 파란색과 마주했다. 이브 클랭이라는 사람이, 커다란 캔버스에 온통 파란 칠을 해 놨다.
꽉 채워진 파란색이다. 날 좀 바라보라고 말하는 파란색이다. 나는 지금 유일하게 여기 당신 앞에 있으니,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자신을 적나라하게 열어 보이고 있었다. 용감하고 아름다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나도록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앞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런 감정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이런 감정을 계획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이 작품을 보러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이해 따윈 필요 없었다. 그냥 느끼는 거였다.
나는 이제 훌륭한 것 대신, 의미를 찾기로 한다. 길을 더 자주 잃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