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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데크레센도 좋은 아침

by 이유


6시도 되지 않은 화요일 도쿄의 지하철은 아직 한산했다. 단정히 입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아마도 출근을 하는 거겠지.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반쯤이나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내 앞의 아저씨는, 피로가 풀리지 않았는지 정신없이 자고 있다. 베게라도 뒷목에 꽂아주고 싶을 정도로 목이 꺾여 있다. 나는 그 옆에 우산이 신경 쓰인다. 아저씨, 이따 내릴 때 우산 잊지 말고 챙기세요. 그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면서 츠키지 역에서 내렸다.


츠키지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두근두근 설렜다. 여행지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이른 아침의 시장이다.

겨된장에 담근 야채들이 죽 늘어선 반찬가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서 조제가 겨된장이 담긴 단지에서 삭힌 가지며 오이를 꺼내서 겨된장을 쓸어내리는 장면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내가 먹을 음식을 맛깔나게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의 당당함 마저 느껴진 달까. 그래서 나는 맛도 보지 않았던 그 누카즈케를 동경해왔는지 모르겠다. 보물단지에서 맛나게 삭힌 야채를 꺼내는 그 동작과 함께.

일단 가볍게 시장 한 바퀴를 돌았다. 시장 입구에 난 길에는 알록달록한 회가 예쁘게 올라간 다양한 치라시스시 가게, 라면 가게들이 있었다. 회보다는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아직 어두운데 벌써 많은 가게들이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육수를 끓이고 있었다. 어느 가게는 의자도 없는데 아저씨들이 잔뜩 서서 라면을 먹었다. 후루룩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가 힘찼다. 여자 혼자 라면을 먹는 모습은 아직 안 보였다.

한 바퀴를 더 돌고, 의자가 딱 세 개 있는 집 앞에 섰다. 아주머니 한 분과 마스크를 쓴 남자 분, 이렇게 두 분이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라면 있나요?”

쇼유라멘이 있었다.

일단 주문을 하니, 빈 그릇에 하얀 가루를 조금 뿌린다. 소금 같기도 하고 미원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진한 육수를 한 국자 넣는다. 거기에 옅은 색깔의 육수를 또 넣는다. 그리고 면을 삶는데, 면을 착착착 하고, 탄력 있게 물기를 빼면서 건져 올린다. 마치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경쾌했다. 탄력 있게 삶아진 면을 육수가 담긴 그릇에 넣고 그 위에 차슈를 몇 장 얹는다. 마무리로 송송 썬 파를 올린다.

모든 과정이 질서정연한데, 정성 또한 느껴졌다. 기계적인 신속함이 아니었다. 과정 하나하나에 담긴 책임감과 자부심이었다.

쌀쌀한 도쿄의 아침에 어울리는 뜨끈한 국물에 속이 금세 데워졌다. 여긴 일본이니까 일본식으로 큰소리 내면서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눈이 번쩍 뜨이도록 맛있는 라면은 아니지만, 좋은 맛의 라면이었다. 기본에 충실한 맛. 성실한 아침 같은 맛.


기분이 좋아서 짧은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라면을 먹고 있는데 어디 멀리서부터 발랄하고 씩씩한 아침인사가 들려온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그 소리는 점점 내게로 다가온다. 좋아하는 작가, 사노 요코를 닮은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시장이 떠나가라 아침인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가게에 그렇게 힘차게 인사를 했다. 드디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


아주머니는 또 다음 가게로 그 다음 가게로 성실히 아침인사를 하셨다. 츠키지 시장에 생기가 팡팡 돌기 시작했다. 라면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입이 귓가에 걸린다. 아주머니의 까만 눈이 반짝였다. 이제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크레센도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데크레센도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네, 정말요, 덕분에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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