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토닥토닥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어줄 거라는 믿음,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예측할 수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마음을 믿음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그곳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고 말을 건다. 길을 잃었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스마트폰보다 현지인에게 물어본다. 기억되는 사람이 없는 여행은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다.
서울이 유난히 건조하고 싸늘했던 그해 겨울, 처음 가본 타이베이는 촉촉하고 따뜻했다. 타이베이의 사람들도 그랬다.
타이베이에 갔던 것은 순전히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때문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기념할 나만의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는 양양이라는 소년이 나온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까? 양양은 아빠에게 질문을 한다.
“아빠, 아빠는 내가 보는 걸 못 보고, 내가 보는 건 아빠가 못 보잖아요. 어떻게 하면 아빠가 보는 걸 내가 볼 수 있죠?”
아빠는, 그게 바로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라며 양양에게 카메라를 선물한다. 그 후로 양양은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삶이 공허하다며 밤새 울었던 엄마에게 날아다니는 모기를 보여주겠다고 팬티바람으로 플래시를 터뜨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의 스스로 볼 수 없는 뒷모습을 찍어서 선물한다.
영화 속의 꼬마 양양처럼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곳의 사진관에서 현상하기로 했다. 나만의 ‘양양 놀이’라 이름 붙였다. 필름이어야 했다. 먼저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진관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결국 반나절을 헤맨 끝에 중정기념당 역 근처에서 사진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둥글둥글 부드러운 인상의 아저씨가 사진관을 혼자 지키고 계셨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다. 한참 말이 통하지 않자, 서로 웃음과 안타까움을 얼굴 가득 머금고 바디랭귀지를 하다가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드디어 뜻이 통하자 서로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아저씨는 일회용 카메라를 건네며 설명을 한참 하셨다. 아마도 카메라 사용법을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배려해주시는 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포장지를 벗긴 카메라를 손에 드니,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서울에 도착해서 일상을 살아나갈 미래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의 타이베이를. 촉촉한 타이베이의 공기, 어둔 회색빛 담이나 바닥에도 아랑곳 않고 자라난 풀들의 싱싱한 초록빛, 아침 일찍 공원에서 체조를 하는 어르신들의 건강한 기운, 스쿠터가 지나가는 소리, 무엇이든 손에 들고 먹기 좋게 파는 야시장의 왁자지껄한 활기, 이런 것들을.
사진을 찍었다.
찰칵, 드르륵 감고, 찰칵, 드르륵 감고, 찰칵.
맡긴 사진을 찾으려고 사진관에 갔을 때 우리는 벌써 세 번이나 만난 사이였다. 타이베이에서 두 번 이상 만난 사람은 없었다. 대단한 사이였다.
아저씨는 현상된 사진을 건네며 뜸을 들이다가 작은 사진첩을 하나 주셨다. 뭉클,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 고맙고 잊지 못할 거고 잘 지내시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몸짓으로 여쭤봤다. 아저씨는 그러라고 사람 좋게 활짝 웃어주셨다. 나는 가지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로 아저씨의 사진을 찍었다.
그 후로 4년이 흘렀다. 타이베이에 다시 갈 이유는 충분했다. 이미 그리울 대로 그리울 뿐만 아니라 안부가 궁금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은 4년 전과 비슷한 한겨울이었다. 타이베이는 날 따뜻한 공기로 맞아주었고, 촉촉한 이슬비로 토닥여주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기대되는 일은, 그때의 사진관을 다시 방문해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사고 사진까지 현상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그 사진관이 여전히 있을까? 아저씨는 아직도 그곳에 계실까?
점점 가까워지는 사진관을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렘이란! 문을 밀고 들어가니, 아저씨가 여전히 계셨다. 아저씨는 그때보다 더 마르고, 머리숱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과 손녀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가 함께였다. 모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오니 모두들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저씨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알아보시겠냐는 의미의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핸드폰에 저장해온, 그때 찍은 아저씨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그 사진을 본 아저씨는, 당신 누군데 내가 이렇게 활짝 웃는 사진을 갖고 있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황급히, 스마트폰으로 ‘4년 전에 여기 왔었어요.’라는 말을 검색했다. 번역기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화면에 띄워 주었다.
“아~~~~~~!”
히유, 날 알아보셨다. 입을 크게 벌리시고 와하하하 웃으셨다. 아저씨는 여자분에게 한참 이야기를 하셨다. 간간히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시는 걸 보니 4년 전에 방문했던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여자분의 딱딱했던 표정이 점점 부드러워지더니,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활짝 웃으셨는데 그 얼굴이 무척 고왔다. 여자 아이도 다가와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하나 달라고 말했다. 아니, 사실 번역기가 글자로 나 대신에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저씨와 여자분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아무도 찾지 않아서 들여놓지를 않는다는 거였다. 아, 그렇구나. 이제 우리가 스마트폰 덕분에 의사소통이 편해졌듯이, 카메라도 스마트폰 속으로 손쉽게 들어간 것이다. 세상이 빠르고 편리해졌다. 나는 필름만의 그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기대하며 설레었는데, 맥이 빠져버렸다.
두 분이 무언가를 속닥속닥 진지하게 이야기하셨다. 이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부스럭 부스럭 저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그것은 까만색 필름 카메라였다. 사용법이 간단한 자동카메라다. 오랫동안 쓰던 건데 괜찮으면 그냥 가지라고 하셨다. 선물이라고. 필름은 넣어야 하니까, 필름만 사라고.
기뻐하는 내 모습에 번역기는 필요 없었다. 두 분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알아들으시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 감사해라. 이 예측 못할,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사람의 마음만큼 놀라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필름을 넉넉히 사서 타이베이의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찍었다. 시간을 들여 걷고 길을 잃다가 마음에 담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셔터를 눌렀다. 마음껏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 카메라와는 달리, 필름 카메라에는 제한된 숫자가 있었다. 그래서 셔터를 누를 때 마음이 평소보다 진지했다. 피사체를 바라보며 잘 부탁한다고, 조그맣게 인사했다.
그리하여 예측 불가능한 타이베이가 선물 받은 카메라에 담겼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사진을 현상했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