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하는 독일어 두 가지가 있다. '츄스!'(Tschüss!) 와 '아우스강'(Ausgang)이다.
베를린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가장 유용했던 단어이기도 하다.
'츄스'는 십중팔구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마법의 말이었다.
"언니, 아마 언니가 츄스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랄지도 몰라."
친한 사이에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라고, 독일에서 유학 중인 친척동생이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츄스!'를 더 쓰고 싶었다. 독일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쓰기에는 의외인 구어체의 말인 모양이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점원에게 웃으며 '츄스!'라고 하자, 고맙다는 말에는 미동도 않던 무뚝뚝하던 점원이 믿을 수 없이 환한 얼굴로 화답하는 게 아닌가!
'아우스강'은 내가 얻은 말이다. 도대체 이 것이 독일말로 무어냐고 친척동생에게 물어서 알아낸 말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갔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마치 그 시대의 한 부분을, 아니 시공간을 통째로 떼어와 전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박물관에서 그런 감동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전시물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다리는 아프지, 배는 고프지. 박물관이 어찌나 큰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에서 열이 후끈후끈 났다. 인적이 드문 전시관에서 오래된 유물들과 있자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EXIT라는 표지판이 없었다. 박물관 직원분들께 물어봤다. '출구가 어디지요?' 내 영어가 맘에 안 드는지 대답은커녕 화가 난 표정이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질문이 바보 같아서였을까? 대답을 안 해줬다. 정말 나 나가고 싶다고요. 어디로 나가야 하나요.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날 친척동생을 보자마자,
"출구가 독일어로 뭐야?"
라고 물었던 일이다. 그리고 뭐 그런 걸 묻냐는 듯 어이없어하는 친척동생의 표정. 너무나 목말랐던 출구라는 그 말은,
"출구? 아우스강이야."
아우스강. 자유가 콸콸 흐를 것 같은 강이 아닐 수 없었다.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아우스강. 써줘! 이거 손바닥에 쓰고 다녀야겠어."
그 단어는 베를린에서 정말 유용했다. 베를린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규모가 엄청났다. 그래도 아우스강이라는 말을 가져서 무척 든든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때는 영어 표지판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아우스강'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출구를 찾기는 같은 말 쓰는 한국에서 더 어려운 것 같다. 답이 안 나오는 하루하루, 이 버거운 지금을 탈출하고 싶을 때 누구라도 붙잡고 "아우스강?"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출구를 발견하면, 탈출하며 산뜻하게 작별인사를 날리는 거다. "츄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