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으로 나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거의 10년을 일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여행사였다. 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몸살을 크게 앓았다. 몸이 괜찮아진 후 몇 달간은 괜찮았다. 더 많이 바깥에 나가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도 등록하고 독서모임도 적극적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사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구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구직활동은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거절과 무시의 반복 속에서 무기력과 불안이 자라났다. 나는 점점 작아지는데, 자기소개서가 바라는 나는 너무나 커다랐다. 실업급여가 끝나갈 즈음 자택에서 근무하는 프리랜서 일을 구하게 되었다. 문을 열고 바깥에 나가는 일이 점점 복잡하고 버거운 일이 되었다.
나부터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되는데, 나가서 산책을 하면 분명 마음이 더 좋아지는데 그게 왜 어려운지. 어떤 날은 그래, 할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나가고, 어떤 날은 옷을 다 입고 신발까지 신었다가 다시 벗는다. 어두운 밤이면 가만히 생각한다. 내일 아침엔 일찍 나가서 공원도 가고, 갓 구운 빵도 사 오자고. 오후엔 볕이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오자고. 물을 사러 편의점에라도 가자고. 하지만 해가 뜨면 다시 마음이 작아진다. 나도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친구가
"왜 그런 것 같아?"
라고 물었다. 회사일로 무척 바쁜 친구였다. 요즘 같은 때에도 온라인 상으로, 소규모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친구였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도 있었다.
마음이 작아지면 귀는 커진다. 친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숨 소리로 알아듣고 만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하는 일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처럼 버겁다. 상처는 작아진 마음에 주인으로 들어앉는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다. 상처가 나를 주관하는 일. 상처가 미움이 되는 일.
얼마 전 빨래를 하고 널다가 창문을 열었다. 그 창을 열면 한 발짝 정도 떨어진 거리에 회색 시멘트 벽이 있다. 이끼 낀 담 너머에 집 머리가 빼꼼 있고, 하늘이 보인다. 오후 3시쯤엔 거기서 햇빛이 쏟아진다. 봄 냄새가 났다. 빨래 냄새와 무척 어울렸다. 짙은 회색 시멘트 벽에 점점이 하얀 것이 묻어있었다. 작고 일정한 크기였다. 바람이 불었다. 점점이 하얀 것이 날아 다녔다. 벽에도 앉고 땅에도 앉았다. 나는 고개를 좀 더 쭉 빼고서 두리번거렸다. 저만치 오른쪽에 벚꽃이 흐드러진 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불어온 곳이었다.
그날 아침은 밖으로 나갔다.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점점이 봄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