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창녀와 졸부
어김없이 서윤은 출근길 전철에 서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구찌 핸드백이 가격순으로 정렬된 페이지가 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에르메스 골드 목걸이가 화면에 떴다. 제일 싸고 못생긴 목걸이, 심지어 쿠팡 최저가는 72 만원이었다. 서윤의 한 달 식비를 웃도는 금액이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서치하는 손가락은 멈출 줄 몰랐다.
“앗, 공덕역..!”
서윤은 전철에서 서둘러 내렸다. 그는 회사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서윤이 흠칫 놀라 소리 난 쪽을 보니 예주가 있었다.
“안녕...”
서윤은 시선을 피했다. 예주는 눈을 한 번 깜박이고는 다시 제 컴퓨터로 고개를 돌려 파티션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서윤이 자리에 앉은 순간 뒤에서 반갑지 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아, 안녕.”
서윤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뒤돌아보았다.
오영식 과장이었다. 그는 36세였는데, 서윤이 입사하자마자 잘 사는 집안에 주식 투자도 성공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베테랑으로 소문나 있으며 전 직장은 대기업이었다고. 카페도 취미로 운영하고 있다나. 그렇다는 양반이 왜 차 있다면서 한 번도 주차장을 안 쓰고 대중교통을 애용하고 있는지는 서윤에게 의문이었다.
영식이 말했다.
“오늘 준희 연차인 거 알고 있지? 잘하자?”
“네!”
“난 오늘 팀장님이랑 같이 미팅 있어서 서윤이 너랑 같이 밥 못 먹어. 어떡하니.”
“아쉽다.. 그치만 괜찮아요. 하하.”
영식이 뒷모습을 보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저 네이비색 패딩 조끼와 스트라이프 셔츠 조합은 언제 안 촌스러워지지, 서윤은 코웃음 쳤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이 금요일에 혼밥하게 생겼군, 서윤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옆자리에 있던 예주가 물었다.
“서윤 주임님, 혹시 오늘 밥 같이 드실래요?”
“어?”
서윤이 당황해하는데 예주가 말을 이었다.
“제 동기가 오늘 바빠서 점심 건너뛴다네요.”
“아, 그래. 그럼 같이 먹자.”
예주는 서윤의 밝아진 표정을 확인하고는 싱긋 웃었다.
구내식당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전철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서윤은 식판에 반찬을 옮기며 예주 쪽을 힐끔거렸다. 오늘은 나물 반찬에 미트볼, 마늘쫑 소시지 무침에 콩나물국이 나왔다.
서윤은 예주를 보며 생각했다. ‘쟤 입맛에 이런 짬밥이 맞을까? 꿀꿀이죽 같지 않겠냐고.’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저런 애들은 뭐 먹고 살까나.’
새삼 서윤은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에도 검소하게 살라고 강조하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원망스러워졌다. 가세 기울기 전에 유학이나 보내주지, 해외여행 한 번 보내주지, 좋은 것 좀 먹으러 다니게 해주지, 라는 생각들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둘은 테이블에 앉았다. 서윤이 물었다.
“요즘 일은 할만 해? 어때?”
“처음엔 어려웠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요. 할 만 해요!”
뻔하고 재미없는 대답이었다. 서윤은 “음~”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나? 그냥 집에 있으려고.”
“아아… 저두요, 하하.”
거짓말, 서윤은 미트볼을 삼키며 눈을 흘겼다.
‘저번에 통화 내용 들어보니 따로 뭐 하는 일 있어보이고 바빠보였는걸. 몰래 사업이라던가 하고 있는 거 아냐?’
서윤은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요즘 성수동에서 체험형 전시회가 유행이라더라.”
“와~ 어떤 걸 체험하는 거래요?”
“모조품으로 만들어진 숲길을 맨발로 직접 걷게 한대. 사진 찍기에 되게 예쁘다는데? 이것 봐 봐.”
서윤이 휴대폰을 내밀어 보였다. 모형으로 만들어진 꽃과 나무가 실내 전시관에 동화 속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데가? 멋져요~! 주임님, 주말에 친구분이랑 가보셔요!”
“어휴, 난 다음에. 그나저나 예주 씨는 남자친구 있던가?”
“아, 없어요. 흐흐.”
실없이 웃기는, 서윤은 예주가 다시 만만해보였다.
“왜? 예주 씨 괜찮게 생겼는걸. 남자친구 없을 외모가 아닌데?”
“에이~ 아니에요! 남자들 저한테 관심 없어요! 전 여자들만 예쁘다 하는 얼굴인가 봐요.”
“설마, 하하.”
서윤은 ‘너 같은 금수저라면 결혼하려는 남자가 줄을 설텐데.’라고 생각했다.
“주임님이야말로! 완전 남자들이 좋아할 상이신데? 약간 다람쥐 같으세요!”
“다람쥐..?”
“네! 코 오똑하고, 얼굴 짧고, 그리고 또…”
서윤은 이 대화가 점점 예주라는 사람 마냥 실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둘은 식사를 마치고 사내 카페로 왔다.
“아까 거기는 너무 시끄러웠지 않아요?”
“그러게. 여기로 오니까 좀 낫다.”
오히려 밥 먹고 나서 점심시간이라는 게 실감 날 때가 있었다. 예주가 먼저 구석진 자리로 갔다. 서윤은 예주를 따라 앉았다.
“근데요, 주임님.”
“응?”
“어제 저 보셨죠?”
서윤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모든 감정-자격지심, 열등감-이 전부 읽힐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서윤이 바로 대답을 못하자 예주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물었다.
“절 주차장에서 보시지 않았어요?”
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주는 활짝 웃었다.
“어쩐지~! 아니, 제가 낯이 익었는데 그때는 아리까리했거든요.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주임님인 것 같더라고요!”
서윤은 왜인지 민망해졌다.
“저 얼마 전에 양천구로 이사 왔어요.”
“아, 그래?”
“저, 여기..”
예주가 명함 같은 종이를 척, 내밀었다. 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그걸 두 손으로 받고는 곧바로 혼자 후회했다. 한 손으로 받았어야 했는데. 그 짧은 잡념을 떠나보내고 서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종이에 적힌 글자였다.
‘목동 하이팰리스 아파트
7F 레스토랑 식사권’
흰 바탕에 금색 양각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다음에 여기서 같이 식사해요, 주임님. 제가 이사 온 아파트인데 거기에 레스토랑이 딸려 있거든요. 원래 입주민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 식사권도 나눠줘요. 얼마 없는 거 드린 거예요? 하하. 다음에 시간 되실 때 말씀 해주세요. 꼭 같이 먹어요!”
“…그래, 고마워.”
서윤은 표정관리에 전념했다. 이 아파트 들어봤다. 목동에 있는 주상복합 고층 오피스텔 아파트였다. 가격은…
“거기 지금 최소 40억이잖아.”
이곳은 탕비실. 그곳에 서윤과 그의 사수였던 김지안 대리 뿐이었다. 지안이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나 공무원 친구가 말해줬어. 갑자기 목동 하이팰리스 아파트는 왜? 누가 거기 산대?”
“아, 아뇨. 그냥 들어보셨나 해서요. 유명한 아파트인가 하고..”
“응, 왜? 서윤 씨 설마 거기 들어가려고?”
“아니요~!”
서윤은 급하게 손사레쳤다.
“하이팰리스 아파트 좋지~. 말이 주상복합이지, 거기 밑이 백화점이잖아. 그게 무슨 주상복합 오피스텔이야. 그냥 연예인이나 사는 그런 데지.”
젠장… 서윤은 속이 점점 안 좋아졌다.
“막 70층까지 있다던데, 대박이지… 어머, 서윤 씨, 괜찮아?”
“아, 네, 괜찮습니다.”
“오늘 금요일이기도 하니까 열심히 해서 칼퇴하자, 응?”
“넵..”
서윤은 주머니에 있던 식사권을 꺼내 다시 확인했다. 아파트의 이름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예주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임님~”
목소리까지 떠오르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식사권이 구겨져 버렸다. 그는 구겨진 식사권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집어 넣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카카오톡에 로그인했다. 오영식 과장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서윤아 오늘 뭐해?’
이 늙다리가 뭐라는 거야-그의 액면가는 서른아홉이었다-, 서윤은 카카오톡에 답장했다.
‘아 과장님 ㅎㅎ 저 오늘 집 가서 쉬려구요’
‘그럼 오늘 같이 카페 고?’
아… 서윤은 생각에 잠겼다. 영식은 커리어가 짱짱한데 이 회사에 왜 들어왔는지 의문이라며 추켜세워지고 있었다. 미국 유학파이긴 한데 글쎄, 왜 결혼을 못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 말하기 어려웠으나 서윤의 눈에 그의 미혼은 비자발적이었다.
좌우지간 영식은 업계에 인맥도 넓고 친화력도 뛰어났다. 서윤이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영식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업계 베테랑 상사가 나서서 친한 척 해주니 오히려 땡큐지, 서윤은 그렇게 여겼다.
7시 퇴근 후, 서윤과 영식은 역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호프집에 다다랐다. 카페라더니…, 서윤은 영식의 눈치를 살폈다.
영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기가 음식이 맛있어. 너 저녁 안 먹었잖아. 밥은 먹어야지. 하하.”
“그건 그래요, 과장님~.”
둘은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영식은 서윤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영식이 말했다.
“요즘 많이 피곤하지?”
“아, 네. 일이 좀 많아서요.”
서윤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고래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버티더라. 너 보고서도 깔끔하고. 솔직히 요즘 서윤이 네가 제일 믿음직해. 나 서윤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지 몰라.”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요.”
서윤은 입술을 앙다물고 핸드폰 화면을 슬쩍 확인했다. 아무 알림도 없었다. 시간은 가지 않고 있었다.
“요즘 얼굴 좋아졌더라.”
영식은 잔을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피곤한 와중에도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거 보면… 남자친구 생긴 건가 했지.”
“아뇨, 없어요.”
서윤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는 눈앞의 감자튀김 안주를 입으로 우겨 넣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나갈 타이밍을 재며 맥주잔을 다시 들었다.
“근데… 예주 씨 말이야.”
영식이 말을 이었다.
“서윤아, 너도 알지? 걔가 집이 뭐 대단한 척 하잖아. 차도 외제차 끌고 다니고.”
그렇다. 예주는 눈치 아예 없는 애는 아니었지만,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요즘 애들이라 그런가? 벌은 돈 별로 없으면서 있어 보이려고 애 쓰는 것 같아. 그거 다 낭비야. 그냥 졸부 같아. 걔 목동에 산다는데 진짜 부자라면 강남에 살지 않아? 하여튼 애매해.”
그렇게 말하는 영식의 입꼬리는 제법 씁쓸하게 올라가 있었다. 서윤은 어째서인지 예주가 환하게 웃던 얼굴이 또 떠올랐다. 괜히 불편해져 잔에 입만 댔다.
“서윤이는 그런 애들 보면 어때? 좀 기분 나쁘지 않아? 차는 좋은 거 타고 다니면서 월급도 많이 받고, 출근도 느긋하게 하고, 완전 꿀이지, 걘.”
“잘 모르겠어요.”
서윤은 짧게 대답했다.
“전 그냥 제 일 하는 것도 벅차서요.”
“그래서 내가 서윤이 너를 좋게 보는 거야. 진짜로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사람, 요즘 많지 않거든.”
영식은 서윤의 눈을 보며 말했다.
“서윤이 넌 개념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서윤은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과장님, 오늘 불러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 집안일 할 게 좀 있어서요.”
서윤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챙겼다.
“벌써?”
영식이 아쉬운 얼굴로 서윤을 바라봤다.
“나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오랜만이잖아.”
서윤은 욕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걸 참고서 겉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엔 팀으로 다 같이 먹어요. 오늘은 좀 피곤하네요.”
밖으로 나오자, 밤거리에 불빛이 퍼져 있었다. 서윤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쓰디 쓴 맥주의 끝 맛이 목에 남아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은 지나갔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두고 나니 금방 월요일 아침이 돼 있었다. 서윤은 전철을 타고 오는 내내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허리는 욱신거렸고, 아랫배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1층에서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감각이 왔다. 서윤은 숨을 들이쉬었다.
‘아, 터졌다.’
다행히 가방에 비상용 생리대가 있었다. 서윤은 급히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여자화장실 앞에 붙은 A4 용지가 서윤을 막았다.
‘점검 중’
“아씨이..”
서윤은 이를 악물고 옆에 있던 남자화장실 문을 열었다. 서윤은 얼른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영식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마케팅팀 대리와 사원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요즘 여자애들은 진짜 눈치도 없고,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내가 뭐 좀 챙겨주면 당연한 줄 알고 받아먹어, 어휴.”
대리가 낄낄 웃었다.
“그래도 서윤씨는 괜찮지 않아요? 조용하고 아담하고.”
“아, 말도 마. 얌전한 척 하면서 문제 많은 애야, 뒷수습 하기도 질려. 그런데 걔. 내가 디자인계 탑급이라면서 얼마나 아부떨던지. 부담스럽다니까!”
“아하하, 과장님, 이 참에 우리 마케팅팀 들어오시죠!”
서윤은 자신의 갤럭시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아, 그럴까? 하하하! 됐다, 그래~. 아, 나 먼저 가볼게. 팀장님이 부르신다!”
마케팅팀 사원이 말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넵, 먼저 가십쇼!”
문이 닫히자 마케팅팀 대리가 말했다.
“이서윤 주임 말이에요. 오 과장이랑 맥주 마셨다는 거 진짤까요? 와, 오반데.”
“진짜 그런 거면 그 분도 문제 많죠..”
“솔직히 그 분 좀 그거 같지 않아요?”
대리가 말을 이었다.
“창녀-.”
서윤의 손끝이 떨렸다.
사원이 말했다. “아, 어떤 부분이 그래요?”
“눈빛이라던가 그런 게 좀.”
“아하…”
마케팅팀 대리와 사원도 화장실을 나갔다. 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생리대를 부착한 뒤 칸을 벗어났다. 서윤은 손을 씻고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 지금 누가 있는가. 난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서윤은 화장실을 벗어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바로 옆 예주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9시가 되기 전까지 서윤은 계속 예주의 빈 자리를 힐끔거렸다. 9시 정각에 예주가 도착했다.
예주가 인사했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안녕, 예주 씨.”
예주는 사내 인트라넷에 로그인 중이었다. 서윤이 예주의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예주 씨.”
“네?”
“전에 말한 그 레스토랑… 언제 같이 갈 수 있어? 난 오늘 저녁에라도 되는데.”
-
창녀와 졸부 프롤로그 링크
https://brunch.co.kr/@7fc51ffe161348f/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