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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ug 07. 2022

달콤 중독자의 이상한 식사법

- 지독한 과자 중독자의 흑설탕 입문기 -

참 좋아라 한다. 어떤 과자든.

바삭하고 매콤한 맛에 톡 부러지는 바삭한 과자도 좋고, 속에 초코를 조금 품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달콤한 과자도 좋고, 특별한 자극적인 맛이 없이 밍밍한 과자마저 좋다.

과자 사 먹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기에 그랬을까? 소싯적 난 아마 세계 최고의 과자 중독자였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매우 참고 참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장을 보러 가서 설탕을 보면 반드시 그 감촉을 느껴본다.

비닐 안에서 천사점토처럼 진득하니 엉겨 붙어 움직이는 달콤함의 절정을 찍는 그 오묘한 감촉.

예전에 나의 최고 애정 간식.

미소가 절로 나는 고마운 아이이자, 한편으로는 그것으로밖에 달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외롭고 슬픈 기억이기도 하다.



대학교 시절,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오롯이 혼자였다. 원래 누구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에다 그 상황들이 모두 내 책임인 것 같고 사람들이 친구에 대해 물어볼까 무서워 사람을 피하게 된 탓에 더욱 고립되었다. 그러고 보니 늘 밥이 문제였다. 그때만 해도 혼밥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나라는 사람은 혼자 숟가락에 밥을 얹어 입 안에 넣어 우적우적 맛있게 씹어 먹을 정도의 대범한 성격이 되지 못했기에, 왁자지껄한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학교 주변의 음식점에서 하하호호 모여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는 각종 무리들 틈에 혼자 한 자리 차지할 정도의 배포도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혼밥을 힐링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식사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회기에서 역곡. 저렴한 보증금을 찾아 구한 원룸도 멀리 있었기에 집에 들러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매일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많은 이유들 중에 그렇게 밥이라는 고민이 늘  한자리 떡 차지하고 있었다. 녁은 늦게라도 집에 와서 엄마가 보내주신 구운 김과 진미채 무침으로 밥을 먹으면 되니 점심만 해결하면 되었다.


점심때 즈음 늘 여자휴게실의 빈자리를 찾아 배회했다. 매점에서 천 원짜리 김밥을 사서.

그마저 다 팔린 날엔 매점표 샌드위치.

그것도 다 팔린 날엔 '칼로리 발란스'. 그때쯤 처음 본 과자인데 한팩을 먹으면 하루 영양소를 모두 먹게 된다는 조그만 과자였다. 씹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딱딱한 브라우니 같은 질감에 천오백 원 정도의 가격에 하루 영양소와 달콤함까지. 내겐 당시 최고의 과자였다. 무튼 매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먹을 것을 사서 다른 학부들이 위치한 건물의 여자휴게실에 가서 먹으면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내겐 그나마 편안한 공간이었다.

제일 구석자리를 찾아 앉는 날에는 빙고! 최고로 운 좋은 날이었다.



직장 시험을 준비할 땐 근처 산 중턱에 위치한 부천 원미도서관으로 7시 오픈 시간에 맞춰갔다. 아침 공기도 쐬고, 산책도 하고 교통비도 아낄 겸 조금 멀었지만 운동삼아 걸어 다녔다. 점심때가 되면 집에 걸어와 엄마가 보내주신 김과 진미채 무침과 함께 밥을 먹고 다시 걸어가 문 닫을 때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도서관의 지하 매점에는 대형 과자들도 소봉지 별로 소분해서 팔았기에 여러 가지 과자들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었고, 난 특히 씹을 때 소리 안 나는 과자를 선호했다. 도서관이니까. 그것이 나의 저녁식사였다. 매일 고르는 맛이 있고 나의 허기와 달콤함의 갈증까지 풀어주는 과자 저녁, 나는 그것을 위해 교통비를 아끼려 즐거이 걸어 다녔다. 매일 집까지 왔다 갔다 평균 10km 정도를 걸어야 했지만 과자,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해갈되지 않는 과자 중독자인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하루 종일 밥 대신 과자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당시 나의 힐링푸드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과자 데이'. 그날은 집 근처 작은 마트에 가서 할인하거나 묶어 파는 과자를 많이 살 수 있는 날. 단 최대 10개. 절대 10개를 넘어선 안된다. 난 과자라면 끝도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으로 정한 상한선이었다. 그럼 그날은 도서관에서 점심 먹으러 집에 와서 밥 말고 과자를 맘껏 먹었다. 집에서는 와그작와그작 소리가 많이 나는 과자를 먹었고, 소음을 덜 내는 과자는 가방에 넣어가 도서관에서 저녁으로 먹었다. 그것이 그 당시 나의 유일한 힐링이었다.

든든한 내 친구 같았다. 말없이 내 곁에 내 끼니를 걱정해주는 친구.



이후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하루 종일 과자에 대한 욕구를 해갈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과자 사러 나갈 힘도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어느 날 집에서 밥을 해 먹겠다고 사 왔던 흑설탕이 날 도와줬다. 흑설탕 근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 찐득한 달콤한 향기에 나도 모르게 냉큼 열어서 가득 퍼서 먹어보았다.

. . 신세계였다.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 목이 따가울 정도의 달콤함에 빠져 그 커다란 봉지에 든 흑설탕을 큰 통에 담아 매일 많이도 퍼먹었다. 마치 커다란 컵에 든 아이스크림을 퍼먹듯이.

흑설탕은 냠냠이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 그 이유는 먹어보아야 한다. 그 냠냠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한참 퍼먹고 나면 과자 생각이 조금 사라졌다. 매일 말라가던 나에게 그것은 영양제였고 힐링푸드였다.



이제는 흑설탕을 사지 않는다. 오래전 젠가부터 난 먹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 탓일까?

아니다. 직장에 다니고 나서는 조금 더 편리하게 먹을 수 있고 배가 조금 부를 수 있으며 흑설탕보다는 값비싼 초콜릿으로 옮겨다.


아침을 가나초콜릿 1개와 믹스커피로 대신한 지 15년째.

그러고 보니 해의 새해 결심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초콜릿 한 판을 끊는 것이었는데, 두 달도 되지 않아 무참히 실패했다.

분명 중독은 중독이다.



행복한 달콤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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