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모아졌던 눈물방울들이 모여 때마침 내 마음속 주전자가 가득 채워진 날일 터였다.
찰방찰방 넘실거렸던 눈물 주전자를 비울 때가 되었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았던일들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혼자 감추어 울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파서 눈물이 절로 나는 날에도 울지 않는 척 아이와 신나게 웃음소리를 내며 놀았고, 삶 자체에 지쳐 포기해 버릴 것 같은 날에는 사람 얼굴이 아닌 것 같은 얼굴로 아무 생각도, 표정도 없이 버텼다.
복직을 하고 나서 직장에서조차 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없었으니, 출근길과 퇴근길에 한 번에 눈물 주전자를 비워냈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땐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부러 걸어가며 쏟아냈고, 그래도 덜 비워진 날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신경 쓸 사이도 없이 이를 꽉 깨물고 조용히, 열심히 울었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날들은 언제고 있었고, 오늘도 그런 날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이 다른 날과 다른 점은 내 눈이 눈물로 가득 차오르자마자 내가 노트북을 찾아 달려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물 대신 이곳에 쏟아내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내가 맘껏 울어낼 수 있는 나만의 비밀공간이라는 생각과 이 글자들 하나하나가 내 눈물 한 방울씩 가져가 줄 것 같은 기분, 여하튼 고작 이만큼 쓰는 동안 글씨가 눈물 때문에 보이지 않아 눈을 몇 번 뻐끔거리다 눈물을 게워내었고, 이제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다. 감사한 공간이다.
며칠 전 버스에서 여느 때처럼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나의 부모님 연세 정도의 어르신 분들이 큰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음악소리를 무심케 할 정도의 커다란 목소리에 놀라긴 했지만, 나누시는 얘기들과 말투들이 덤덤한 듯 귀여워서 나도 몰래 그 얘기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우리 초등학교 때 저기 맨날 갔었잖아! 기억나냐?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저기 진짜 많이 변했다."
한 어르신이 버스 창밖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거기만 변했냐? 우리는 쭈그렁 망태기가 되었잖아! 마음은 그대로인데. 참 많이 변했다 세상이. 난 딱 한 번만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진짜 내 마음대로 멋지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던 어르신이 처음으로 슬그머니 말을 꺼내셨다.
"넌 지금도 충분히 네 멋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더 하고 싶냐?"
"나는 딱 100살까지만 살고 다시 태어나서 이 좋은 세상 한 번 다 즐기면서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사는 거 진짜 좋잖아!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사는 게 참 좋다!"
난 창밖을 보며 어르신 얘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났다. 마침 내 마음속 주전자가 가득 채워진 날이었는데 어르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내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내 주전자를 넘치지 않게 꼭 붙들어 안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낸 후에 내가 살아낸 삶이 좋았다고 행복한 미소로 얘기하는 그 어르신의 얼굴은 분명 빛이 나고 있었다.
어르신은 과거의 기억에 잠기신 듯, 빤히 보는 나의 시선을 느끼시지 못한 것 같았다. 등산 후 넘치게 허기를 채우신 것 같은 딱 붙는 등산복 차림과 오랜 시간의 등산으로 지쳐 보이는 젖은 머리카락들과 검게 그을린 피부,한낮의 시간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보통의 어르신분들이었지만 행복함으로 충만해 보이는 눈빛이었고, 그분을 둘러싸고 함께 웃으시는 친구분들도 매한가지였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사는 게 참 좋다!"
이렇게.
직장에 다닐 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내가 언제 무슨 이유로 이곳을 떠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떠나는 날 '나 이곳을 정말 떠나기 싫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
내가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일컬었던 이곳이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떠나기 싫을 정도의 파라다이스가 되는 날이 올 거라고그렇게 나를 다독였었다. 그렇게 누구보다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내었지만, 결국 그 소원은 조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