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 너와 함께 꿈을 꾸지 -
11월이야.
너의 달이지.
차가워진 공기를 한껏 머금은 미세한 빗방울들이 정신없이 뛰어가던 내 몸을 재촉하듯 흠뻑 적셔내었던 때,
눈물과 빗물, 슬픔으로 범벅이 되었던 때,
네가 사라져 버렸던 때.
10월엔 유난히도 많이 걸었어.
그때마다 구름 한 점 없던 파란 하늘이 늘 나와 함께 해주었지.
네가 가장 좋아하던 바로 그 하늘 모양과 색깔.
마치 구름 하나 없는 파아란 하늘을 좋아하던 네가 이때쯤으로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덕분에 너와 함께 걷는 기분이었지.
사랑하는 네 얼굴을 바라보듯 하늘을 바라보았고,
존재하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가셨어.
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언어로는 감히 설명이 안되지.
넌 그때도,
지금도,
생각의 뒤로 놓을 수가 없는 소중한 사람이기에,
널 잃은 것은 내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일 수밖에.
처음에,
너의 언니로부터 네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땐,
순식간에 의식을 잃을 정도로 아팠던 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더라.
시간이 지나,
네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말하는 법을 잃었지. 언젠가는 우는 소리도 나오지 않더라.
살아내야 했으니까, 정신을 꺼내어두고 살았어. 그러지 않으면 못살겠더라.
너와 함께했던 때에 너의 마음속 괴로움과 죽음의 준비과정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
의식하면 살 수 없는 나날들이었지.
네가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 찾았다던 내 이름,
내가 감히 그럴 자격이 있는가.
남겨질 나를 위해 써두었다는 너의 편지,
감히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오랫동안 정신을 내어 놓고 나니,
조금씩 그것 자체가 내가 되어버렸지.
공허함에 휘감겨 아무것도 없는 나로 리셋이 된 느낌이었어.
그렇게 지금껏 살았어.
비어있는 내 안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네 몫까지 멋지게 살아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은 그렇지가 못해.
그래도 열심히 가고 있어. '무식하게 열심'인 나, 알지? 조금만 기다려봐.
네가 떠난 이후 가장 변한 것이라면,
힘든 일을 겪을 때면 항상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지 중 하나로 꼭 두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그땐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는 네가 다행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
넌 내가 이러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떠난 후 남겨질 자들의 고통을 생각했지.
그러면서 그 선택지는 지워갔어.
글로 쓰니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그 선택지를 지우는 일이 그렇게 힘들더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에게 사랑을 바라는 일이 얼마나 욕심스러운 것인지 이젠 알지.
이렇게나 소중한 사람을 알게 되고, 내가 힘들 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거.
네가 떠나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사람.
그게 사랑이지.
널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이 되어 부러 소외되게 살았어. 누군가의 곁에 서기가 두려웠지.
생각해 보니 그 이전의 삶도 크게 다르지가 않더라. 그런 내게 네가 다가와 날 일으켜주었지. 내가 보답할 사이도 없이 네가 사라졌지만.
그래서 내겐 꿈이 있어.
나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네가 나에게 주었던 것처럼 나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 삶의 행복함을 나누고 싶어.
노력하다 보면 길도 보이겠지?
지금은 내 안에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야. 비어있는 내 속을 채우려니 어떤 때는 조바심이 나고 절망적일 때도 많지만, 너를 만나는 기분으로 즐거이 이 여정을 해나갈 거야.
그래서,
언젠가는 웃으며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슬픔도, 눈물도 없이,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