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무한히 신뢰하는 엄마 덕분으로 사주나 운명 같은 것들에 관심이 없다. 어릴 적엔 불길한 일이 닥칠지 모르니 마음을 단단히 여미라던 엄마의 말에 두고두고 공포에 떨었다. 좋지 못한 일이라면 별하게 기억력이 발하는 내겐 그런 날이 대부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럴 정도의 것들은 아니었고, 갈래만 조금 달랐을 뿐 누구나 겪을만한 일들이었다. 그저 길할 일보다 불길할 일을 조금 더 격정적이고 실감나게 들려주는 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였을 뿐. 결국 그들에게도 선명한 해결책은 없었고, 난만한 경고만 있었다. 야무지게 듣고 야멸차게 곱씹으며 손톱을 물어뜯던 무수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지쳐 흥미를 잃어버렸다.
친구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김에 근처 사주카페도 예약했다고 했다. 엄마로부터 전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가보는 일은 처음이라 자못 두려웠다. 하필 지금 나의 처지가 변변찮은 탓이라 생각하다, 흔쾌히 따라나섰다. 강남의 굵직한 빌딩 사이, 아담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모르는 이의 맹렬한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사무실에 오롯이 앉은 그는 한사코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 공들여 나의 지난 날들과 지금의 날들을 들려주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많이 받아 시기, 질투로 괴로웠겠구나, 외적으로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갖고 있겠고, 지금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느니, 하물며 자식을 기르는 일도 노동의 하나인데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는 타박으로 마무리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아랑곳없이 미소했다. 그래, "괴로웠겠구나!", 그의 수많은 문장 중 어느 문장의 끄트머리만 얼추 맞아 보였다.
하루가 버거운 이에게 앞으로의 날들은 절멸한 듯 보였으므로 궁금한 것이 없었다. 하나 말없이 미소하던 내게 물어볼 것이 없냐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말라 앞으로는 살만한가 싶어 왔는데, 별 묘책이 없나 봐요.", 물어보듯 읊조렸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 지난날 실패했던 자신의 자살시도들을 열거해 주었고, 내게 내년에도 살아 자신을 찾아오라 당부했다.
그 정도의 위로라면 충분했다.
그렇게 연말이 찾아왔다. 저장된 연락처가 하나 없는 내게도 연말이면 안부를 전해오는 이들이 있다. 전화번호라는 숫자의 형태로 저장되지 않았을 뿐, 심연에 무형으로 저장되어 있는 이들. 사직을 고민하는 이들이 간혹 내게 행복하냐고 물어오면, 도망하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사직 후에 달라진 것들을.
숨을 쉴 수 있었고, 숨을 수 있었다. 홀로일 수 있었다. 하나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모르는 내게 감히 돌보아야 하는 가족이 있었으므로, 온전히 숨을 수도, 오롯이 혼자일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좋았냐고 물으면, 나의 경우에는 좋았다는 말보다 살아낼 수 있었다에 가까웠으므로, 사직 후 날들이 이전의 날들보다 나았다고 말해줄 수 없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감히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라지듯 사는 일이 괜찮았다. 진정 사라지는 것만 같아 그것이 좋았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무의한 위안과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어렴풋한 기척들이 기어코 하루를 살아가게 했다.
사직한 지 4년. 비록 생활고의 마지막 한계선을 살며시 밟아버린 곯고 아슬한 사직자이지만, 숨 쉬는 일만큼은 전에 없이 사치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 꼬약꼬약하게, 거칠고 불안하게 겨우 숨 쉬며 버티는 이들이 있다면, 위태롭던 마음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만큼은 나의 아슬한 정체를 숨기고 자약하게 숨 쉬는 사치를 보여주고 싶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전부 허물어버리는 듯한, 스스로를 산산조각 낼 것 같던 일이 사실 별 것 아니더라고. 여유만만한 척, 애써 내는 긴 날숨에 실어 가분한 용기도 전해주고 싶다.
마음의 선택지에 희미하게 번호를 매겨선 '사직'이라는 단어를 더해보라고. 설령 선택하지 않을지라도 선택지로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짜릿한 해방감이 되어주거나 발칙한 위로가 될 테니. 또한 '포기'라는 선택지를 두고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에게는 분명 속박되지 않을 용기와 담대한 힘이 피어날 것이므로. 마음이 마를 땐 그렇게라도 마음에 불을 때어 데워보라 말해주고 싶다.
거대한 기쁨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슬프지만은 않을 담백한 위로와 농밀하진 못하더라도 훌훌한 다정을 나누고 싶다.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힘이 세진 자신을 보아주기를, 옹골차게 영글고 있는 자신을 그저 믿어주기를. 한겨울을 핑계 삼아 몸을 한껏 옹송그려 더욱 초라해진 내게도, 꼭 전하고 싶다. 강남 한복판에서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무심코 전한 위로처럼.
그 정도의 위로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