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비뚤

by 린ㅡ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는 말은 다른 것이라고. 어렴풋이 막연하게 짐작하곤 했다. 좋아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의 마침표를 찍고 나서는, 과연 다른 말이라 여겼다.


둘이 직선 위에 어느 만큼의 간격을 두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쩌면 올곧이 등을 돌리고 탓에 교집합이 없는 단어일지도 모르겠고.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는 원 위에 하나는 시계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반시계방향으로 달아나는 말인지도, 그리하여 결국 같은 지점에서 꼭 끌어안게 되는 말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같은 의미가 되어버리는 마법 같은 찰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점, 선, 면 어느 방법을 통해 보아도 그들 사이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도대체 뭐 하고 살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게,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나의 삶이고, 이것이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미소 가면을 쓴 채로 숨어, 소리나 발걸음을 내지 않으므로, 쉬워 보이는 미소 뒤에 어려운 마음을 숨겨 살아내는 일에 대하여 누군가는 가늠하지 못했다.


나의 삶이 더욱 허망해보는 것은 온전히 보폭이 없는 나의 탓이고, 보폭이 없는 이에겐 소리가 없었다. 리듬마저 잃었다. 망설이는 일이나 제자리걸음하는 일은 참으로 쓸데없어 보인다. 하릴없이 매 순간 설킨 나의 마음속으로 말간 다정의 주문을 걸어보지만, 몽한 찰나와 자욱한 시간을 억겁의 노력과 연약한 주문으로 살아내는 일은 자못 어렵다. 쉴 사이가 없고, 쉬어서도 안 되는 일이 과연 버겁다.



그리하여 난데없이 비뚤어지고 싶은 때가 있다. 가면을 벗고 조금도 미소하고 싶지 않은 때라던가, 가지런히 빨래를 개어두고 옷장에 차곡하게 넣어두고 싶지 않은 때, 지저분한 것들을 모아 막아놓은 수챗구멍을 얌전히 틔워주고 싶지 않은 때, 혼자 영화를 보러 가 김밥보다 비싼 팝콘을 사는 사치를 부리고 싶은 때. 일 년에 몇 번쯤은 그러고 싶은 때가 있다.


고약하게 가벼운 일이 유난하게 하기 싫어 바동대거나 함부로 가벼워지고 싶은 때가.


당신만 그런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그저 가면을 덮어쓴 보통의 존재일 뿐이라고 변명하려다, 그마저 귀찮아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적어선 말간 벽에 붙여두었다. 쩨쩨하고, 바지런하게.


보통의 존재들이 부리는 고약함이나 비뚤어짐 뒤에 "그때는.."이라는 변명과 함께 슬쩍 내미는 미안 가면이 싫었다. 그때만은 같은 변명을 꼬리표로 달고, 같은 표정을 하고선 미안하지 않은 미안함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정작 어디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입술을 모아 닫은 가면 때문이었을까.





같은 순간, 함께 바라보는 장면이 똑같은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을까. 관통하는 시선에 따라, 마음의 시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비슷하지만 강약을 달리할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 다른 이의 마음에는 발길조차 들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지.


너의 사랑이 나의 사랑과 의미를 달리하는 것처럼.


같은 모양새를 가진 단어의 내밀한 의미를 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문자 그대로의 사랑을 마음에 담았다가, 내 안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이라 명하여 묵직하게 얹어 보내야지. 그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사랑은 점잖고 고요하지만 잖이 무게가 나간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 줄 수 있을까.




비뚤어지는 일은 사랑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활짝 비뚤어져 보니 결국 좋아하는 네게, 사랑하는 당신에게 바르게 안길 준비 동작이었던 것. 그렇게 이해하고 나서야 얄궂은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흠씬 비뚤어지고 나서야, 한껏 사랑할 수 있었다. 사랑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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