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르르. 손가락 사이로 블루베리 한 알을 놓쳤다. 얼마 못 가 그것은 데굴데굴 굴러 기름때를 두르며 구저분한 접시 아래로 숨어들었고, 나는 그것을 집어 오밀조밀 헹궈선 작은 접시에 담아두었다.
언제나 그랬다. 놓치고 버려지는 것들, 미미하고 미력한 것들,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것들이 좋았다. 지저분한 그릇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황폐해진 블루베리 한 알은 그래서 욕심이 났다. 쓸데없이 탐욕스러워지는 순간이 쓸모없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를 입학하면서 모든 생활비는 혼자 감당하기로 했다. 울산에서만 20년을 살았기에 서울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고, 당장의 월세가 문제였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의 같은 과에 합격한 이가 연락을 해왔고, 함께 하숙을 하자 했다. 얼마 뒤, 그 아이는 기숙사에 신청해 당첨이 되었다며 짐을 쌌다.
나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새벽까지 일하느라 기숙사 신청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고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마주하면서도 혼자만 기숙사를 신청한 친구를 원망했다. 하지만 기숙사의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결국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나의 탓이었다.
하숙집의 주인은 2인의 하숙방을 쓰고 있으니 내가 그 아이의 하숙비까지 한꺼번에 납부해야 한다고 했고, 내지 못할 거라면 당장 방을 비워달라 청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길에 박스 두 개를 가져와 옷과 책을 담아 짐을 챙겼고, 주인은 건너편에 저렴한 자취방이 있다며 친절하게도 나를 안내했다.
오각형 모양의 방이었다. 누워있으면 금시에 코가 발갛게 얼어 외투를 벗을 수 없었고, 좁고 비뚜름한 오각형 모양의 방에 정히 누우면 마치 관 속에 누워있는 기분, 그대로였다. 그렇게 아침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으로 씩씩하게 살았다.
2층 단독주택 건물, 한 층에 방이 4개. 나만 빼고 모두 남자들이 살고 있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술이 취해 방을 잘못 찾아왔고. 고함을 지르며 문을 마구마구 두드리거나 헐거운 문고리를 맹렬하게 돌릴 때면, 정말 관 속이라고, 귀를 막고 주문을 외웠다. 죽은 척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완벽한 방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무음으로 흐느끼며 밤새도록 임사체험을 하곤 했다.
자취방은 사람들이 자주 바뀌었다. 비쩍 마른 그녀는 아무도 쓰지 않는 메마른 싱크대에서 간혹 딸기 한 팩을 씻곤 했다. 나가려다 눈인사를 하면 딸기를 먹으라며 권했고, 그녀는 딸기를 몹시 좋아해서 아르바이트비를 받고 여유가 있을 땐 저도 모르게 딸기를 사 온다고 했다. 딸기 꼭지가 버쩍 마르고 꽁지마다 분홍색으로 뭉그러져 멀리 떨어져 있어도 딸기맛 아이스크림향이 났다.
그녀는 싱크대에 서서 딸기 한 개를 집어 대충 헹궈 자신의 입에 곧장 넣었다. 보기 좋게 담아 먹을 접시도 없었고, 뭉그러진 딸기는 씹을 필요가 없어 보였으며, 배고픈 그녀는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어쩌다 심하게 뭉그러진 것은 내가 먹어서라도 없애주고 싶다가도, 그것마저 야윈 그녀가 더 먹도록 그저 두고 싶었다.
그러다 뒤축에 손가락을 넣어 신발을 신고 있던 내게 마지막 딸기를 입에 쏙 넣어주었다. 정말 맛있지 않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언젠가 내게 여유가 생긴다면 그녀에게 딸기를 꼭 사주겠다고, 새빨갛게 달콤한 다짐을 했다. 하지만 지취방의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고,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오각형의 자취방에선 딸기 한 알의 달콤함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오랜 시간을 견뎠다. 그것을 생각하면 누군가 문을 흔들거나 소리를 질러도 가까운 곳에서 딸기향이 났고, 그녀가 곁에 있는 듯이 두려움을 덜어내곤 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에게 받은 대단한 위로였다.
할인 코너에서 보기 드문 블루베리가 출연하였기에 덥석 집어 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농익어 더욱 달달해진 탓에 아이들은 참으로 좋아했고, 포만감이 드는 묵직한 과일이 아니기에 한 입에 꿀꺽하고서도 아쉬워했다.
손이 작았던 사직자는 사직 이후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버렸다. 할인코너에 있는 것들마저 한참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한없이 신중해지는 것. 먹고 싶은 것이 없는 내게 그때만큼은 새삼스레 고마워진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가의 식재료나 과일을 볼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는 나를 보면, 오각형의 자취방에 살던 나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한결같다는 아름다운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갱신되지 못했다는 말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할인스티커가 붙은 블루베리를 찾아 기웃거리고 포크를 들고 블루베리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며, 뭉그러진 딸기를 헹궈 곧장 입으로 가져가던 그녀가 생각났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고, 싱싱함이나 근사한 접시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것. 그저 한 알. 한 알의 행복. 가장 좋아하는 한 알로 속이 충만하게 달콤해지는 일. 별 것이 아닌 것이 별하게 별 것이 되는 마법 같은 일.
그러니 그 시절과 다름없는 초라한 내가 밉지 않다. 우리는 뭉그러진 블루베리 한 알이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