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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Feb 25. 2023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직장 후유증'

- water, meat, people  -


오랫동안 한 분야의 일을 하다 그것을 그만두고 나면, 각자 자신만의 '직장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창하게 '후유증'이라는 단어를 붙여보았으나, 내게 이것은 15년의 직장생활 후 굳어져버린 고치기 어려운 습관들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안에 깊이도 자리 잡아버린, 

그곳을 떠나와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습관들.


이제 조금 사라져 주라.




* WATER *

카페를 자주 가지 않지만, 종종 혼자 갈 때면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고 심지어 그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이유는 딱 하나, 나는 물을 싫어하게 되었으므로. 에스프레소는 그런 내게 맞춤형 음료인 것이다.



불안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어느 날들도 비정상적으로 불안했다.


어떤 부서에서는 쉴 새 없이 사무실의 모든 전화가 울어댔고, 전화벨이 3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아야 했으며, 통화를 마치고 내려놓으면 곧장 걸려오는 전화로 회신이 필요한 상대에게 전화를 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면 다른 직원이 받아 전해준 메모들을 확인하여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의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에 마음이 가라앉고 손이 점점 떨렸다.


내가 부재중일 때 넘겨받은 민원들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과 함께 더욱 거칠었고, 혹여 나의 부재로 인한 민원으로 다른 직원이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미안해서 업무시간 중에 화장실 가는 일이 두려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물과 사이가 멀어졌다. 물을 마시러 정수기까지 가는 시간도, 물을 물통에 담아먹을 때엔 물통을 세척할 시간도,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 모르는 사이 로 다 줄여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땐 그런 줄을 몰랐다.



이렇게나 답답한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누가 내게 강요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나를 해하는 참 답답한 사람. 누군가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오랜 시간 물과 등을 돌린 터라, 사직한 후 시간이 지나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마시면 속이 메스껍고 수분이 풍부한 과일도 싫어졌다. 종국에는 먹는 일마저도 싫어질 수 있다고 나와 같은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 MEAT *

처음 직장에 다닐 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나 또한 많이 힘들었다. 일 년을 일해보고 이곳이 나와 결이 많이 다른 곳임을 알았음에도 벗어날 용기가 없었견뎌내야 했으므로 일도 마음도 몹시 힘들었다.


소화불량과 두통을 친구로 삼아 살아가던 어느 날, 고깃집에서 회식을 했고 하루에 지쳐버려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그러다 심하게 탈이 났고 병원을 가도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틀 뒤, 씹어 삼켰던 대로 토해내면서 구워진 고기의 거친 부분들이 을 다 긁고 나와 한참을 고통스럽게 보낸 후, 고기를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냄새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이것은 생각하지 못한 불편함을 야기했다. 고기를 못 먹는다 하니 "별나다", "몸매관리를 한다"말을 비롯하여 쏘아보는 눈초리가 다수였으므로 언젠가부터는 고깃집에 가서도 실컷 고기를 구워내고 빈 상추를 동그랗게 말아 입에 계속해서 쏙쏙 넣었다. 그러면 나는 별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단체로 주문해 놓은 갈비탕에도 살을 발라 많다며 부족한 직원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국 아래에 가라앉혀 놓았다.


돌이켜보니, 정말 별났구나.



다른 이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그저 말로 솔직하게 내었으면 될 것을.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혹여  때문에 신경 쓸까 봐 미안해서, 그저 내 마음대로 생각했던 게다. 내가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일 뿐, 돌이켜보면 누구도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 없다.


도대체 그때 나는 누구를 배려했던 것일까. 고기를 먹으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테지만, 배려를 가장한 말이 되지 않는 나의 행동들바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 PEOPLE *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인가.

누군가에는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반대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내가 다루는 일은 일반적으로 호감을 갖고 다가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감사의 말들을 전해주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이 강렬하여 행복했던 기억들마저 덮어버렸다.


아직도, 여전히 입으로 내기 두려운 일들, 마음에서 지워내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일을 할수록 사람이 두려웠고, 결국엔 나의 부모와 자식, 나 자신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모든  싫어졌을 때, 다 그만두고 직장을 떠났다. 그렇게 사람을 피해 도망쳐 나왔고 자발적으로 집안에 갇혀 지냈다.



분노도 인간의 감정 중에 하나인 것을, 그것이 사람을 미워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나도 화가 날 때가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 그것이 '분노'라는 단어까지 미치치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려 노력할 뿐이다. 내가 나 자신의 우울감이나 불안을 안아주어려웠, 타인의 분노 또한 잘 보듬어주지 못했으리라.




직장에서 보낸 시간 동안 어찌 즐거운 일들만 가득할 수 있을까. 고통은 깊이 새겨지므로 즐거움보다 힘이 세어 좋았던 기억을 다 젖히고 먼저 떠오르는 것일 뿐,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꼭꼭 씹어 꿀꺽 넘겨내어 유쾌하게 소화해버리고 싶다.


이제 저 깊숙이 숨어있는 좋았던 기억들, 그리고 함께했던 사람들도 같이 꺼내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저 멀리 우주 밖으로 날려버릴 테다. 세상 누구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 그 향기를 맡지 못하게.



오늘은 따스한 물 한  담아,

말이 되지 않는 나만의 배려와 두려움은 접어두고, 

향기로운 사람 내음 찾아 나서볼까.


내가 만들어 나만 시달리는 후유증이라면,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줄게: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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