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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r 19. 2023

나에게 강제적인 휴식 주기

- 휴식인 듯 휴식 아닌 휴식 같은 나날들 -

나의 새해다짐들 사이에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에게 강제적인 휴식 주기'




무슨 일이든 시작하쉼 없이 하며, 질리는 법이 없고, 쉬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돌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루 안에 곡하게 넣어 매일매일 반복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그중 잘하는 것은 없다. 


결과나 성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타인의 시선에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쳇바퀴 도는 처럼 보이더라도, 그 과정이 기꺼이 즐거웠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난 뒤 선택한 사직이었기에, 나는 이 반복적인 일들과 함께 장의 불안함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깊은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헤어 나와 하루하루 견뎌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날들이 제멋대로 삐쭉빼쭉인 법, 현실은 나의 멋대로 하루를 릴 수 없는 때가 많았다. 많이도 부족하긴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도, ''이기도, '며느리'이기도, '배우자'이기도 하니까.


그러한 나의 역할에 따라 의 쳇바퀴를 돌릴 수 없게 되는 불가피한 상황들에 부딪히면, 아직은 마음의 힘을 단단히 쌓아 올리지 못한 나는 순식간에 불안과 우울의 구덩이로 떨어지 되더라. 


그래서 그럴 때엔 그것을 '나에게 주는 강제휴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 그야말로 잠시 쉬어가라고 내게 주는 신호로 여기며 상황들을 탓하지 않기로, 기꺼이 쉬어가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3주 전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나에게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엄마가 원인불명으로 오랫동안 몸이 불편하시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오시게 된 것. 


2년 전 나는 부모님의를 구하지 못한, 유쾌하지 못한 사직을 했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예상치 못한 좋은 일 다. 당신 곁에 며칠이고 함께 하며 돌보아 드릴 수 있는 것. 




입원을 여러 차례 하셨지만, 이번에는 분명 달랐다. 

걱정은 잠시 뒤로 하고 환자식을 웃으며 드시는 엄마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창 밖의 봄날 같았다. 캄캄하고 어두운 병실에 갇혀서도 우린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보낼 수 있었다. 항상 슬픔과 불안함에 휘감겨 살아가던 우리 둘이 오롯이 고마웠던 일들만, 좋을 일들만 이야기했다.

세상에나, 이런 날이 오다니.



물론 몸도 마음도 단단하지 못한 내게 병실생활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의 오래된 불면증으로 좁은 병실에서 함께 잠을 설쳤고, 좋지 않은 검사결과에 우울함 쫓아버리려 훠이훠이, 걱정에 휩싸여 불안해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최선을 다했던 듯싶다. 덕분으로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나는 일주일째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참 좋았다.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을 만큼. 울먹이지 않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참으로 좋았다. 우울을 곱씹어 말하지 않고 좋은 것들만 속삭이던  시간. 그것이 참 좋았다.




돌아보니 아이를 낳고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조용히 당신과, 그야말로 천천히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 그리고 사직이라는 거대한 솔직함의 보따리를 내어놓은 이후, 나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당신과 조금 더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이야기를 내어놓을  있었다.


그런 내가 당신과 나눈 시간들은 분명 이전의 것들보다 훨씬 좋았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한다는 사실에도 이제 슬프지만은 않다. 불안함과 걱정에 휩싸여 말을 잃었던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이제 조금은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웃었으니까. 다음 달에 당신의 덕분으로 다시 게 될 나의 강제휴식시간부디 이번처럼따스하길 바라본다.





잠시 쳇바퀴에서 내려와 '보호자'와 '딸'로서 느슨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내가 계획했던 '자발적인 휴식'이 아니 어쩔 수 없는 '강제휴식'이었다고 해, 잠시 쉬어가라고 내게 주는 신호라고 생각하니 그 의미가 다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더 큰 즐거움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듯 예상치 못한 휴식도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대학교 시절, 오롯이 금전적인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엔 과외, 아르바이트, 공부 등의 가득히 짜인 스케줄에 속박되어 하루의 시간도 내기가 어려웠다.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부모님을 방문할 때, '우린 살아있는 동안 몇 번 더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헤어지는 길이 목이 메게 슬펐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휴가를 기 어려웠으므로 일 년에 한두 번, 마찬가지였고.


지만 이번엔 달랐다.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사랑해."


세상에, 이런 날도 있다니.


그래. 이렇게나 좋은 날도 . 하나 또 어떤 날은 순식간에 원래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우울함에 지쳐 시들시들해져 버린,  모습 말이다.


하지 이제다를지도 모르겠다. 렇게나 좋았던 날들이 있으니 그것을 곱씹으 고스란히 흘려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 '랑', '해'라는 세 글자가 꼿꼿이 살아남아 소중했던 이 시간을 고이 전해줄 거라 믿는다.


이번 휴식으로 우리의 마음은 분명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러니 예전처럼 먼저 경쟁하듯 달려가 두려워하지 말자.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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