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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n 05. 2023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소심이의 쉽지 않은 마음 하나.

- 소심의 극치에 이르는 중 -


워킹맘으로서 부족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면 멈추는 방법을 몰랐고, 멈추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지쳐 잠든 아이들과 엉망이 된 집을 보며 매일 그렇게 생각하곤 다.


밝아오는 내일이 두렵고 캄캄해지는 오늘을 아내지도 못하는, 시간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는 그 시간 속에 나는 히 '워킹맘'이라는 이름표를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 2년 전, 돌연 사직을 하고 나는 전업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 이제 그 치열했던 사투는 끝이 났을까. 안타깝게도 전혀. 여전히 엉망진창지만, 단지 그것과 사투를 벌이려 하지 않을 뿐이다.


전업맘 2년. 15년이라는 워킹맘의 경력에 비하면 초라한 경력이니, 나는 그저 지금의 나를 '초보전업맘'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언제까지  '초보'라는 꼬리표를 애꿎게 붙여 부족한 육아와 집안일에 당당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모르는 척 천천히 익혀나가고 싶다. 결코 예전처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배우지 않을 테다.





소심이인 내가 전업맘이 되고 나서 매일 부딪히게 되는 불편한 마음이 다.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한 없으, 그저 나 혼자 마음으로 수도 없이 불편했던 일.


'카드가 쉽게 내어지지 않는 마음', 바로 그것이다.

같은 직장을 다니다 나만 도망쳐 나온 것 같은 미안함과 많지 않은 월급으로 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몹시도 옹졸한 마음.



당연하게도  옹졸한 소심이는 사직 후 커피 한잔 먹지 못했다. 'Accentia' 영어 이벤트의 상품에 스타벅스 상품권이 눈에 띄어 도전했고, 그것으로 아끼고 아껴 한 번씩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것을 눈치챈 남편은 이후 주기적으로 내게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 덕분에 조금은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카페에 와 글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줄게요^v^


사직 후 물론 남편의 카드로 생활한다. 사용할 때마다 그에게 지출내역이 문자메시지로 전달되는 그의 카드로.


우리는 대형마트나 정기배송 등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근처 마트에 직접 가서 때그때 할인 중인 식재료를 구입하고, 가까운 올리브영을 들러 세일할 때마다 아토피 보습용 크림을 두둑이 사두는 편이다. 가족 중 3인이 아토피를 가진 터라 매달 크림값으로만 30만 원 이상 하고 있는 덕분의도치 않게 항상 그곳VIP고객도 될 수 있었.


이것우리의 오랜 소비패턴이라 카드결제내역이 그에게 메시지로 전달되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굳이 그에게 항상 알려주었다.

"애들 크림이 하나도 없었는데 세일 중이라 많이 !"


그럴 필요가 없는 일임에도 나는 그 외 큰 금액을 지출하게 될 때마다 그에게 무엇 때문에 무엇을 사게 되었는지 알려주곤 했다. 그가 궁금해할 것 같았고 궁금해도 내게 못 물어올 것 같아서, 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알려주고 당신에게 부담이 될만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 장난 섞어 안심시려던 일이었는데 과연 그에게도 그렇게 느껴졌을. 그의 입장에선 유쾌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땐 전혀 몰랐다.


'이해'가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언젠가 회식 후 조금 늦게 돌아온 그가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돈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사고 싶은 거 모두 사.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내가 그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그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행동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저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도리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눈물이  돌아 서둘러 자러 가는 그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혼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도망 나와 신경 쓰이게 한 것은 정작 나인데.


상대방을 위한다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어쩌면 모두 옹졸한 소심이의 이기적이고 자기 방어적 기제로 인한 결과물이었을 뿐, 그에게 안심은커녕 더할 수 없는 부담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걸. 가만히 있을걸.




'워킹맘'의 시절, 일에 치여 아이들에게 신경 쓸 틈을 내기 어려웠던 때에는 족한 많은 부분들을 '내가 돌보지 못해서'라고 자책의 탈을 쓴 핑계를 다. 지금 일을 그만두고 '전업맘'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나 부족하기만 한 나를 보며 이젠 오히려 '내가 돌보아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게 되더라.


안을 파고 파도 끝도 없이 끌어내어지자책들로 나는 점점 더 오그라드는 중이다. 배우자로, 엄마로, 한 가족의 일원으로도 자신이 없는 나는 그야말로 소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중이랄까. 러다 사고 싶던 것도 내려놓게 되고 작은 것을 살 때도 카드를 내기가 수십 번 망설여진다.


이제 이쯤이면 소심의 정점을 콕 찍은 거 아닐까?



이제부터는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내게 미안하다 말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이나 너희들을 위해서라는 말 말고, 이제 나를 위해 마음껏 해볼 테다.


내가 우울에 움츠러들우리 모두 슬퍼진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오로지 나의 잘못된 생각만 나를 이기적인 자책의 틀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비로소 깨달았으니까.


마음으로 깊이 깨달았다면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 법. 그러니 이제  옹졸한 소심이는 달라질 테다! 



덥석 덥석 카드를 내어놓는 나를
당신은 두려워하게 될지도 몰라.
말리지 마: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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