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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석 Jun 14. 2021

미용사

마음을 채워주는 기술

유럽에 살다 보니 원하는 대로 머리를 깎아주는 미용실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한동안은 한국분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다녔다. 하지만 그분이 다른 나라로 떠나시고는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 달 반전 즈음에 지인의 소개로 일본 미용사가 하는 작은 미용실을 갔다. 밖에서 보면 있는지도 모르게 작고 간판도 없는 곳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얀 벽에 단출한 가구, 깨끗한 바닥 그리고 다소 높은 천장이 있어 편안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가격은 핀란드 현지 미용실에 비해 조금 더 비쌌지만 그동안 겪었던 불편함을 생각하며 마음에 들게만 깎아준다면 그 정도는 지불할 마음이 있는 터였다.

출처: JEFF 홈페이지

미용사는 30대 정도의 남자인데 영어가 잘 안되어서 소통이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20년 전 대학 시절 배운 일본어를 희미한 기억에서 억지로 겨우겨우 몇 단어씩 끄집어내어 소통 같지 않은 소통을 했다. 하지만 미용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성의가 있었다. 내가 예약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썼던 구글 이메일 프로필 사진에 있는 펜더 텔리케스터 기타 사진 이야기를 꺼내며 기타를 치냐고 물었다. 취미로 한다고 하니 본인도 기타를 친다고 했다. 친밀감이 더해졌다. 자신의 기타는 깁슨 레스폴에 빅스비를 장착한 기타라고 했다. 나는 펜더 스트라토케스터를 쓴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서로 다른 직업에 다른 국적, 다른 언어를 쓰지만 공통의 취미가 있다는 게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듬더듬 이어가는 도중 머리가 되어가는 걸 흘끔흘끔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기술을 쓰는 듯했다. 머리를 자르는 손길은 자신감이 있으면서도 신중했다. 어떤 스타일로 만들어 가는지 친절히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게 고마웠다.

출처: JEFF 홈페이지

모두 마치는데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두 번이나 샴푸를 하고 머리 마사지까지 하느라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머리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늘 스포츠머리 같은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녀서 남들이 보기에 성의 있게 깎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 그다지 큰 차이는 없는 듯 하지만 나는 그 차이를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보기에 어떤지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들어간 머리와 그렇지 않은 머리를 할 때 느끼는 감정적 차이는 매우 크고, 그것은 앞으로 한 달 정도 지속되는 불만과 행복의 느낌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미용사는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가족 모두 예약을 하고 같이 갔다. 아이와 나는 커트를 그리고 아내는 펌을 했다. 내가 자랑을 많이 한 데다 아는 젊은 아가씨들로부터 소문을 들어온 터라 아내도 기대하는 듯했다. 아이에게도 말로 하는 소통은 어려우나 눈빛을 주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아내에게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가며 관리 방법까지 알려주려고 많은 애를 쓰는 듯했다. 우리가 미용실을 나가 행복하게 다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미용실을 나와 우리는 서로의 머리는 보며 감탄하고 행복해했다. 셋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점심을 4시가 다되어 먹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모두 즐겁고 행복했다.

미용사의 기술은 그가 일에 임하는 자세 또는 태도와 더불어 그가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고객의 만족 또는 행복 이상의 것들을 다듬고 채워주는 듯했다. 그의 속마음이야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고맙게 느껴졌다. 그 고마움은 우리 세 사람이 앞으로 대략 한 달 이상 동안 누릴 즐거움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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