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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17. 2023

프러포즈, 결혼을 제안할 '용기'

06. 샤넬백? 시그니엘? '후'러포즈만 아니면 돼


학창 시절 능* 보카로 영어 공부를 했던 사람들은

'접사'를 이용한 영단어 암기가 익숙할 것이다.


Propose의 접두사는 Pre-,

Pre- 는 '미리', '먼저'를 뜻하는 접두사로

Predict(예측하다), Preview(시사회) 등의 단어에 쓰인다.


프러포즈라는 말의 세 가지 뜻을 종합하자면

'청혼을 작정하고 결혼을 제안하다' 아닐까?

하지만 한국에서 결혼 전 프러포즈를 한다는 건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쯤 결혼을 생각하냐는 B 어머님의 말,

돈 모아서 언제 할 거냐며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

가진 선에서 알아보자는 우리 엄마의 말.


하지만 나에겐 '시기'나 '돈'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되기 전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B의 '용기'가 필요했다.


식장 잡고 한두 달쯤 먼저 들어간 신혼집에서 하는 프러포즈 말고.

30년 간 들들 볶일까 봐 떠밀리듯 하는 프러포즈도 말고.


예쁘게 다 차려입고 아무것도 모른 척,

시그니엘 호텔 문을 열고

촛불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이거 진짜 갖고 싶었던 건데! 어쩜..' 하며

샤넬백 언박싱하는 거 말고.


앞서 말한 프러포즈들이 틀렸단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프러포즈가 아니었을 뿐이다.


어바웃타임의 프러포즈 씬이 한때 열풍이었던 이유가 뭔가.


출처: 영화 <어바웃타임>


떠들썩한 프러포즈를 준비했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단 한 마디에 친구들을 철수 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이 준비한 모든 프러포즈를 접고,

여자 주인공이 원하는 프러포즈를 선사한 것.


너가 먼저 프러포즈하면 어떠냐고,

요즘은 여자가 먼저 하기도 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나는 한번 용기를 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에게 청혼을 받는 것,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걸 '로망'이라 부른다.


 




결혼에 대한 얘길 처음 꺼냈을 때

B는 3일간의 잠수를 탔었다.


▼ 결혼하쟸더니 잠수 탄 남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7fd6cb00ead0426/1


그리고 우리는 긴 대화 끝에

아직 양가 부모님의 마음도,

우리의 경제적 상황도 여의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혼을 잠시 '유예' 했다.

그동안 데이트도 열심히, 저축도 열심히 했다.

훗날 있을지도 모르는 상견례 비용을 위해

따로 저축까지 했더랬다. (근데 결제 기회 아버님께 뺏김)


그랬기에 나는 더욱더 정식 프러포즈는 B가 해주길 기다렸다.


처음 결혼 얘기가 나왔던 4월,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잔인한 4월!' 타령하며

잠수 탄 그가 연락하길 기다리던 그 계절이 지나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계절이 왔다.


- 한강으로 피크닉이나 갈까?


B의 카톡.


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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