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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17. 2023

"그러니까 이제 나랑 살자"

07.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나를 만나기 전 B는 4년 간 솔로였다.


전여친의 바람과 잠수이별, 그리고 불안정한 미래.

B가 내렸던 결론은 '혼자 살지 뭐.'였다.


실제로 B는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끼긴 했으나

4년 간 여자친구 없이도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는 왜 나와 결혼을 결심하게 됐을까?




2021년 7월 26일.

강사 커플인 우리가 모처럼 맞는 휴일이었다.

쿠팡으로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를 산 B와

아침부터 나름 열심히 도시락을 싼 나.

우리는 피크닉 테이블, 의자, 도시락과 선풍기를 들고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버스 1시간, 도보 7분.

도합 편도 1시간 7분의 엄청난 여정이었다.


한강에 도착했을 때 우린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도대체 취미가 캠핑인 사람들은 체력이 어느 정도인 걸까?

차 없이 뚜벅이로 온 탓도 있겠지만

테이블을 펴기 전부터 한숨이 나왔다.


최대한 시원하게 입는답시고 끈나시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는데도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다.



B가 미리 가져온 선풍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나무 그늘까지 더해지니 점점 시원해졌다.

미미하게나마 불어오는 강바람도 한몫했다.

오는 길에 산 컵수박과 얼음물, 도시락까지 펼쳐놓으니

더위에 잠시 가셨던 입맛이 머쓱해하며 다시 돌아왔다.


'한강엔 왜 불가사리가 살까?'

'저 새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사과는 근데 왜 사과지?

사과가 먼저인가 사각사각이 먼저인가?'


목적도 의미도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건듯 부는 바람 따라 웃고, 떠들고, 먹고 마셨다.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로도 세 시간을 떠들 수 있는,

'만약에...'라는 서로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B와 나.


어떻게 이런 테이블을 살 생각을 했어? 선풍기까지 준비해 오고.

난 진짜 운 좋은 여자야.


던지면,


나야말로 운이 좋지. 이런 도시락 싸 오는 여자가 어딨어. (넘쳐흐를 것이다)


받는다.


시간, 돈, 꿈, 나를 위한 시간...

안 그래도 아낄 것이 넘쳐흐르는 세상에,

우리는 표현만큼은 아끼지 않기로 했다.




노을이 질락 말락, 할 때쯤.

B가 삼각대로 동영상을 찍자고 제안했다.

아까 먹을 때 충분히 찍었다고 용량이 없다고 거절했다.

근데 주로 사진이나 영상은 내가 남기자고 하는 쪽이라,

제안한 B가 머쓱할까 싶어 그럼 타임랩스(저속or고속 촬영)라도 찍자고 했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한강을 보며

언제나 그렇듯 둘만 즐거운 얘기로 무르익어 갈 때쯤.


B가 물었다.


여경이는 나랑 왜 결혼하고 싶어?


평소 하도 이런 얘길 많이 나누는 우리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내 생각을 줄줄 얘기했다.


왜기는, 일단 B는 잘 생겼고.

또 누구보다 사랑으로 가득한 집안의 아들이잖아.

아버님과 어머님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상상 가서 좋아.

언니도 언니 남편 분도 너어무 좋으시고.

또 B나 나나 단점이 되게 명확한데,

우린 그런 단점이 서로에게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리고 난 B랑 있을 때의 내가 좋아.

왜냐하면 B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드러나게 해 주고

또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 고마워.

아, 결혼하고 싶다.


그럼 B는? 원래 비혼주의였잖아.

결혼하게 된다면 왜 나랑 하고 싶어?




B가 나와 결혼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무어라 말을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어지는 B의 행동에 그 전의 말은 다 까먹어버렸다.


내 옆에 앉아있던 B가 왼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오른손으로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한강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는다.


우아하게 입을 틀어막는 여주인공은 온 데 간데없고

나는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얼굴이 엉망이다.


사각형 상자를 여는 B의 두 손이 덜덜덜 떨린다.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 목걸이가 있었다.



...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살자.




결혼하자는 말에 3일 간 잠수를 탔던 그 남자가,

4개월 만에 다이아 목걸이를 건네며 나를 울렸다.


'같이 살고 싶어서'

그의 결혼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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