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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20. 2023

결혼 준비의 시작과 끝, '집'

08. 수많은 집 중에 내 집이 없다


눈물범벅 프러포즈 다음날,

꿈 많은 피터팬과 그의 예비 아내가 처음 한 일은 뭘까?


집만 있어도 결혼 준비가 끝났단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사는 예비 신혼부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두 사람이 살 '집'을 구하는 일이다.


애초에 '부모님께서 도와준다'는 선택지는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집을 구하자는 생각이었기에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동원해 둘이 살 집을 구했다.


조건은 명료했다.


1. 우리가 감당할 선에서의 가격일 것

2. 결혼 전까지 입주할 수 있을 것


양가 부모님 생각은 물론 다르셨겠지만

방의 크기, 위치, 심지어 반지하냐 옥탑이냐조차

우리에게는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원룸이면 어떻고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덥다는 옥탑이면 또 어떤가.

당장 이 사람과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공간을 구하는 일인데.


우리 부모님의 첫 신혼집은 '여관'이었다.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월세도 없이 함께 산다고?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공간'이었다.

친구에게 3달치 여관 세를 빌려 무작정 상경한 아빠와

아홉 살 어린 그런 아빠를 믿고 따라온 엄마.

그들은 약 20년 후 시세 차익 수억의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다.


그때 만약 아빠가 당장 살 번듯한 집이 없다고 결혼을 망설였다면?

엄마가 사랑이 밥 먹여주냐며 아빠를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아파트는 고사하고 나와 내 동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때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우리 집의 가난에 대해서,

엄밀히는 지난날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울에 자리를 잡고, 집을 갖고, 

이제는 '일시불'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이 여자 하나만큼은 밥 굶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아빠의 사랑이었으며,

아빠가 모은 돈이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능력과 성실함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었다.


나 역시 B를 사랑했고, 그를 믿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나를 믿었다.

우리 엄마아빠가 서로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았듯이,

나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SH, LH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매입임대, 행복주택, 청약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각종 부동산 어플을 보며 시세를 눈 여겨보았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나는 열심히 거를 건 거르고 취할 건 취했다.

틈틈이 양가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글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집을 알아보는 일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양가 첫인사 일정, 상견례 일정 등 가족 관련 행사부터

웨딩 촬영, 웨딩홀 예약 등 신랑 신부의 일까지...


" 와, 결혼 진짜 두 번은 못하겠다. "


나의 말에 B는 자기 말고 또 누구랑 하려고 했냐며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시 지축 A-1 신혼희망타운 모집 공고가 떴다.

애초에 내 청약 통장은 서울권 통장으로 가망이 없었고

경기도권 만점인 B의 통장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55형 작은 아파트였고 지축은 아직 교통이나 상권이 자리 잡기 전이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망의 서류 대상자 발표일

열심히 B의 이름 세 글자를 찾아 마우스를 굴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잘못 봤나 싶어 나의 당첨 내역 조회를 클릭했다.


당첨 내역이 없습니다.



그렇지, 한 번에 될 리가 없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열심히 

부동산 어플과 각종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던 2021년은 집값이 미쳐 날뛰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 집 하나가 없었다.

원룸, 반지하 쪽 매물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B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둘이 싸우면 각자 지낼 방은 있어야지!"


맞는 말씀.

싸워본 적은 없지만 어머님 말씀엔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혼자만의 영역이 너무너무 중요한 B에게

글 쓸 수 있는 공간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엄마, 엄마는 아빠랑 신혼 초에 다투면 어떻게 했어?"


"책 한 권이랑 쪽지 하나 남겨놓고 며칠 잠수 탔었지."


"무슨 쪽지?"


「 그 책 다 읽을 때쯤 돌아올 테니 반성하고 있어.

돌아오면 책 내용 뭔지 물어볼 거야. 」


쪽지를 남기고 부산 이모집에 며칠 머물다 엄마가 돌아오면

여관집 주인 할머니가

총각이 매일 밤 책에 코를 파묻고 자더라고 전해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결혼 전,

싸우면 각자 지낼 방이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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