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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22. 2023

행복주택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09. 마치 결혼 축하라도 받은 것처럼

결과적으로 우리는

싸우면 각자 들어갈 방이 있는 집은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신반의하며 넣었던 고양삼송 행복주택 서류 전형에서

'예비 5번'을 받고, 최종 입주자로 선정됐다.


'신혼부부' 전형으로 당첨이 됐기에

우리는 6월 11일 결혼보다 이른 5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아파트 사전 점검날,

나는 B와 시어머니와 함께 우리의 신혼집이 될 아파트로 향했다.

당시 뚜벅이이던 우리는

웨딩 촬영부터 시작해 시어머니 차를 얼마나 얻어 탔는지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밤잠을 설친 시어머니의 속사정


우리는 당장 입주가 중요했기에

전형 중 가장 작은 평형인 36형에 지원했었다.

방 하나에 거실로 이뤄진 1.5룸은 약 10평 정도.

혼자 자취하는 청년들에게도 입주 기회가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총 층수 9층의 아담한 아파트.

36형의 신혼집이 너무 작진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던 시어머니와 달리,

6년 간의 보금자리를 얻게 된 우리는 흥분으로 가득 찼었다.

알록달록 마치 레고 같은 아파트 외관을 보며

나와 B는 온 우주가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관리사무소에 들러 임시 열쇠를 받고

9층 중 딱 중간, 5층에 내렸다.

우리 집은 52#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도니

코너에 위치한 신혼집이 우릴 반겼다.


"대박, 코너 집이잖아! 너무 좋아!"

 

여느 임대 아파트들이 그렇듯 층간 소음보다도

벽간 소음을 더 걱정했었는데 한쪽 벽간 소음 걱정은 던 셈이었다.

사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평생을 부모님 집에서 각자 살면서,

코로나19 정책으로 밤 9시에 헤어져야 했던 우리에게

함께 살 공간이 생겼다는 것, 그것 말고는 중요치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B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시어머니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정말 걱정이 돼서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

너무 다행이다. 생각보다 넓고 좋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랬다. 우리는 또 우리 생각만 했다.

좁으면 어때, 어디든 서로만 있으면 되지!

하지만 항상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셨고,

더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셨다.


우리가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해도

부모님들의 귀에는 아마 들리지 않으실 거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효도하기로 했다.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면 살아가는 것으로.


실제로 신혼 당시 친정 엄마는

요즘 나 사는 얘기 듣는 게 너무 재밌어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연락하기도 귀찮다고 했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더 바랄 게 없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3주 전, 기적적으로 집이 생겼다.



각자의 역할


입주 전 인테리어부터 가전 가구를 들이기 위한 측정까지

오로지 B가 도맡았다.

애초에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한참 기말고사 기간이었기에 시간도 없었다.


결혼준비 초 살짝의 트러블이 있었는데

바로 웨딩홀이며 드레스샵 등

내가 혼자 다 알아보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B는 다 괜찮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했었지만

나는 모든 걸 함께 결정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관심 있는 사람이 다 고르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B는 단 한 번도 내 선택에 토를 단 적이 없는데!

(물론 너무 아니면 아니라고 의사표현은 분명히 해주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90% 이상의 결혼준비를 혼자 했다.

그 뒤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신부에게 최적화된, 신부를 위한 결혼 시스템에

남편들이 할 일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인테리어 및 집 관련 일들은

B가 모두 도맡아 하기로 쉽게 결정 내릴 수 있었다.

그 분야는 B 전문이니까!

우리는 입주 전까지 신혼집에서 살지는 않았다.

그 기간 동안 B는 치수를 재고, 택배를 받고,

입주 청소를 부르고, 줄눈 시공을 처리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손으로 음식물쓰레기봉투 하나 사본 적이 없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면 단언컨대 싸울 일이 없다.




" 여경이는 내게 안정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집 같은 사람이야. 그렇기에 여경이랑 있다가 헤어질 때마다 내 집이 멀어지는 느낌이었어. 이제 집에서 살고 싶어, 평생. "


나를 집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생겼다.


주차장뷰지만 그 어느 카페보다 아늑한 우리 집 베란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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