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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22. 2023

브라이덜 샤워를 친정이랑 했다고?

10. 우리 가족이 본식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
그거 친구들이 열어주는 거 아니야?


브라이덜샤워는 결혼을 앞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개최하는 파티로,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이 모인다. 파티는 신부가 아닌 신부의 친구들이 개최한다. 이 단어는 ‘신부의’라는 뜻을 가진 브라이덜(Bridal)과 ‘소나기(shower)’라는 뜻을 지닌 샤워의 합성어로, 신부 친구들의 우정이 비처럼 쏟아지는 표현에서 파생됐다.


- 출처 : 네이버





언제부턴가 함, 폐백이란 단어보다

브라이덜 샤워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진 우리다.

나 역시 두 무리의 친구들이 고맙게도 브라이덜 샤워를 열어주었고,

결혼 전보다 더 자유롭게 살려고 결혼하는 거니

결혼 후에도 더 재밌게 잘 지내보자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신혼집에서 대중교통, 자차, 자전거 모두 10분이면 가는

가까운 학원에서 근무 중이다.

하지만 결혼 전엔 왕복 3시간 거리의 학원을 다녔다.


결혼 준비와 기말고사 준비를,

그것도 왕복 3시간의 직장을 다니며 하느라

나는 별 다른 다이어트 없이 10kg가 빠졌다.

친정 식구들은 하루하루 말라가는 나를 보면서

너무 무리하면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진 않은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매일 물어보고 걱정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정이 다 된 시간 퇴근을 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침대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자꾸만 언제쯤 도착하냐는 동생의 카톡에

조금씩 짜증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가 만든 우리 집 나무대문을 끼익, 연 순간.



결혼 축하해!




엄마의 의견으로 준비했다는 서프라이즈 브라이덜 샤워.

사실 엄마는 브라이덜 샤워가 뭔지도 몰랐을 텐데.


결혼을 앞둔 한두 달 전부터 엄마는 자주 울었다.

한번 시집가면 친정은 못 오는 그런 시대도 아니고,

신혼집도 친정에서 차로 10분 거린데

우리 딸 보고 싶을 땐 어떡하냐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쏟았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내가 가니까 후련하다고,

서른 돼도 안 가면 내쫓으려 했다고 맘에도 없는 소릴 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고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최 씨 집안의 장녀,

심지어 58 개띠다.

내 기억 속 엄마는 항상 강했고, 바빴고,

미안하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니 차를 타고 웨딩 촬영을 가고

친구랑 함께 웨딩드레스를 보러 갈 때도,

심지어 예식장 뷔페 시식을 갈 때도

엄마는 바쁘다면서 알아서 준비하라는 말만 했었다.

그래서 내 결혼도 그저 쿨하게,

이혼이나 하지 말라며 덤덤히 받아들일 줄 알았다.





엄마가 쓴 편지를 보자마자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다.

결혼을 앞두고 내 머릿속에는 그저 B와 하루빨리 함께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몰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그 마음을 떠올리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시작은

평생을 함께 해온 식구와의 이별이었음을,

나 역시 결혼이 처음이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엄마는 미안하단 말 없이도 미안함을 전달할 줄 아는,

목소리는 크지만 마음은 여린 사람이었음을

너무 오래 잊고 지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기죽을까 봐,

급식통에 매일 쪽지를 넣어주었었다.


- 예쁜 딸 오늘도 힘내. 씩씩하게!

-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지내.

-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


16 식구들의 밥을 해야 했던 외할머니가,

친구를 데려간 엄마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문전박대했던 날.

엄마는 훗날 엄마가 된다면,

자식들이 집에 누굴 데려오든 반갑게 맞이해 줘야지, 다짐했었다.

삼겹살 몇 줄을 사는데도 손을 벌벌 떨었던 엄마 속도 모르고

친구란 친구는 다 데려가 "엄마 밥 줘!"를 외쳤을 때.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내 친구들치고 우리 엄마 밥 안 먹어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 엄마 밑에서 나는 가진 건 없어도

가지고 싶은 게 많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은 게 많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날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날을 앞둔 것에 기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겪어야 할 이별이 두려워서,

함께 한 날 동안 서로에게 못해준 게 생각나 미안해서


그냥, 모든 게 다 처음이라서.


그 덕에 우리는 결혼식 날 한 명도 울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복한 웃음으로 하객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은 특별한 신부 입장으로

하객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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