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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22. 2023

"결혼하자"는 말에 잠수 탔던 그 남자의 사정

12. 비혼주의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비혼주의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이집트 신화나 베오울프의 서사시처럼,

결혼은 나와는 아주 다른 시공간 속의 이야기인 줄로 알고 있었다.

내가 이른바 ‘결혼 생활’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감히 내 가정을 바랄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관혼상제를 비롯한 식(式)에 대한 저항감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녹이 슬만큼 자못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생각의 전환이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아내는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내 삶에 등장했고,

그것은 고독에 흔단을 내었다.

아내는 내 사고의 근간을 흔들었고,

내가 걷던 경로를 완전히 바꾸어 내가 바랄 수 없었던 미래를 내게 소개했다.

결코 아내가 ‘결혼 홍보 대사’인 양 나를 설득했다든가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결혼을 결심하기 전까지 아내는 그저 나에게

많은 말들을 들려주고,

많은 감정들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아내 덕분에 나는 아내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고 느낄 수 있었다—단언컨대 그건 절대로 손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 아내와의 영원한 삶을 바라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혼에 있어 논리적인 사고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는 코 푼 휴지 조각보다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혼자이고 싶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하지만 확실하게—결혼을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결혼해서 행복해, 결혼이 나와 잘 맞아,라고 누구에게나 목에 힘주어 말할 수 있는 남편이 되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행복을 찾을 줄도 모르고 비혼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나,

그 사람의 이야기야말로 아주 다른 시공간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이뤄낸 건 오롯이 아내의 위업이다.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하고 싶은 일이다.






B의 글을 끝으로 글을 마치며.


이 글은 결혼 장려를 위한 글이 아니다.

결혼이 삶의 정답이라 말하는 글도 아니다.


다만,

정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옆에 있는데

확신이 안 서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결혼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결혼, 좋을 줄 알고 준비했는데

해보니 더욱 좋다.


우리의 결혼 생활을 들려줄 기회도 곧 오길 바라며.


이 시간,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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