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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22. 2023

결혼식날 아빠와 함께 춤을

11. 아빠, 아빠, 우리 아빠.


모든 딸들은 아빠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조금 더, 아빠를 많이 사랑했다.

아빠는 나에게 모든 것이었다.

아빠가 출장이라도 떠나면 아빠 냄새난다며

수건을 붙잡고 몇 날 며칠을 엉엉 울었다.

아빠 냄새가 고된 노동에서 나온 땀 냄새라는 걸 알게 된 건

좀 더 머리가 크고 나서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가려고 했을 때

어린 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은


"우리 집에 아빠 있어서 안 돼."였다.


왜?

아빠가 있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자다가도 내가 전화하면 잠옷바람으로 데리러 오던,

엄마 대신 내 교복과 실내화를 빨아주던 아빠.

'아빠 같은 남자'를 이상형으로 세우게 만들고,

그래서 이상한 남자를 만나더라도

'이런 취급받자고 아빠가 그렇게 사랑해 준 건 아니지.'

금방 정신 차릴 수 있게 만들어 준,

내 세상의 전부이자 우주였던 아빠.


어떻게 하면 결혼식에서

아빠의 손을 놓고 남편의 손을 잡을 때.

아빠도 나도 울지 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춤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나는 아빠와 춤을 추곤 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 내가 추던 춤은 춤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어설펐다.

아빠의 발등에 내 발을 얹고서 손을 맞잡고

음악도 서사도 없이 오로지 몸짓만 존재하던 춤.


하지만 모든 예술이란 게 으레 그렇듯

아무런 사심도 목적도 없던, 몸짓에 차라리 가까운 그 춤은

내가 살면서 춘 모든 춤보다 가장 춤다운 춤이었다.

우리의 춤이 멈춘 건 내 무게가 아빠의 발등에 짐이 되기 시작하면서였다.


뿌레카나 비계 같은 단어가 익숙한 건

포클레인 기사였던 아빠 덕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을 하면 나와 동생은 늘 며칠씩

아빠가 일하는 현장에 놀러 갔다.

벽에는 헐벗은 여자가 모델인 달력이 걸려 있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오지 않던 그 현장이

나에겐 그 어떤 놀이터보다도 더 흥미로운 놀이터였다.


쁘레카가 뭐야, 착광겠지.

아시바가 아니라 비계고.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

아빠와 추던 춤을 멈췄을 때처럼 현장에 발길도 끊었다.

그 모든 건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레 이뤄졌다.


출장 간 아빠가 보고 싶어 아빠 수건에 코를 박고

아빠 냄새난다며 울던 아이가,

그 냄새가 땀에 전 냄새였음을 문득 깨달았을 때처럼.


나에게 비 냄새란 비릿한 철 냄새였다.

비가 오면 아빠는 현장에 일이 없어 구리를 깠다.

피복을 벗겨 고물상에 넘기면 1kg에 7,000원.

집에서 까자니 눈치가 보여 다리 밑에 자리를 잡고 까던 날,

아빠는 골프채를 멘 중년 무리가

자신을 보며 수근대는 것을 견뎌야 했다.


우리 가족의 무게를 견디려면

아빠는 몇 킬로의 구리를 까야 했던 걸까?

아빠가 짊어진 가족의 무게는 몇 kg이었을까?




수백 번 넘게 돌려 봤던 디즈니 만화 신데렐라.

나는 언젠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왈츠를 추길 고대했었다.

아빠와 걷게 될 버진로드가 눈물바다가 되지 않길 바랐다

나는 왕자가 아닌 아빠와 버진로드에서 춤을 추겠노라 선언했다.


모두의 앞에 서서 아빠와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예를 갖춰 인사도 나눈 1분 남짓한 그 시간.


나는 아빠로부터 날아갈 준비를,

아빠는 나를 날려 보낼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무수한 길 앞에서 무너질 때,

아빠와 추던 왈츠를 기억해 내길.

아무리 험난한 길일지라도 그 시작은 아빠와 함께 춘 춤이었음을 잊지 않길.


우리가 췄던 춤처럼, 서툴어도 우아하게 살아가길.

때론 빙그르 내 몸을 돌리며, 때론 삶의 박자에 내 몸을 내맡기며.

그리고 그 옆엔 늘 B가 함께일 것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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