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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 Oct 14. 2023

모은 돈 없는 자식들이 결혼을 선포했다

05. 그 엄마, 그 아빠의 사정



그 여자, 그 남자의 사정


부모님 얘기를 하기에 앞서,

결혼 선포 당시의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3년 동안 잘하던 방송 작가 일을 때려치우고

마케팅 회사로 이직한 지 막 1년차던 내 얘기부터 하자면

모은 돈 2천만 원, 학자금 대출 천만 원.

만기를 앞둔 곗돈 천만 원.

청약 통장은 있어야 한다는 엄마 말에

300만 원 정도 납입을 했던 상황.

하지만 서울권 청약은 꿈꿀 수도 없었다.


B는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휴학 후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라 글을 쓰던 중였고,

나를 만났을 당시 모은 돈이 없어 카드론으로 데이트를 하다

안 되겠다 느끼고서 영어 과외 시작.

내가 결혼 얘길 꺼냈을 당시 300만 원을 모았고

경기권 만 점짜리 청약 통장이 있었다.






그 엄마, 그 아빠들의 사정


2021년 4월,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막내아들이 갑작스럽게 던진 결혼 선포.

게다가 바로 다음 해 22년 2월에 결혼하겠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가진 건 없지만 괜찮아요!

서로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이 말 자체가 얼마나 불효였는지.

시부모님께도, 우리 부모님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떨어지기 싫어 결혼을 결심한 20대 남녀가

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돈 보고 결혼하면 그 사람 돈 없어졌을 때 어떡할 거냐고,

연애도 아니고 결혼에 있어서

돈은 정말 나중의 문제라 말했던 아빠.

B 같은 남자 찾기 힘들다며

흙 속의 진주를 캐낸 거니 잘해주라던 엄마.


하지만 그런 우리 부모님도 내색은 안 하셨을 뿐

정해진 것보다 정해지지 않은 게 더 많은 우리의 미래를

많이 걱정하셨을 터.

없이 시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몸소 겪은 우리 엄마아빠니까.




연애를 시작한 지 반년쯤 지났을 때

B의 부모님께서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다.

4년 동안 연애는 물론이고 바깥출입도 잘 않던 B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기고,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를 나가니 당연 궁금하셨을 거다.

마침 B의 생일이 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뵀을 때.


B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쪽이 ㅇㅇ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뜨억, 하는 마음에 B의 부모님 표정을 먼저 살폈다.

B가 평소 표현에 거리낌이 없고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기 부모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다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는데,

이어지는 B의 말.


"이쪽은 우리 부모님. 나를 만들어주신 분들이셔."


부모님을 소개할 때조차 평범하지 않은 B.

그러나 이어지는 어머님의 말에 나는 더 놀랐다.



잘 만들었죠? (웃음) 어서 와요.


서른도 안 된 나에게 첫 만남이란 이유로

존댓말로 인사를 해주시고,

낯 간지러운 B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시며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그렇다... B 심은 데 B 날 수밖에.


B의 따뜻한 마음과 남다른 멘트(?)는

전부 그의 부모님에게로부터 온 것이었고,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나와 B를 대입해 보았던 것 같다.

게다가 '시누이'라는 말과는 너무나도 멀어 보이는

B의 누나까지.


사랑이 최우선인 집안의 딸이,

크리스마스마다 모여 한 해를 보내고

새해 소망을 비는 집안의 아들을 만난 것이다.


그 해부터 나는 11월 21일 B의 생일에 모여

선물을 주고받는 '시크릿 산타' 뽑기를 하고

크리스마스에 다시 만나 선물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렇게 결혼을 '유예'하기로 한 우리.

하지만 결혼을 유예한 건 B와 나뿐이었나 보다.


어느 날 B의 집에 놀러 갔는데 어머님이 물으셨다.



너네 왜 결혼 준비 안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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